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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습 불가능 상태가 된 오케스트라를 구하러 그가 무대 위로 돌아왔다. 먼저 음악을 멈추고 어디서부턴가 새로 시작하자고 말할 줄 알았건만 그러지 않는다. 몇 마디 말도 없이 그저 태연하게, 각 악기군에 몇 회의 큐를 주니 한 악기씩 슬며시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온다. 어렸을 적에 내가 가지고 놀던 변신 로보트처럼 두어 번의 손놀림에 다시 원래의 모습이 되었다. 말문이 막히는 기묘한 솜씨에 나와 악장이 다시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 ②
물론 리허설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도 네 시간 정도가 남긴 했지만 혹시나 늦으면 어쩌지? 이 와중에 믿을 거라곤 딱 하나밖에 없었다. 다름아닌, 마에스트로가 제 시간에 나타날 리 없다는 사실. 그런데 여섯시쯤 겨우 로테르담에 도착해 리허설 시각에 딱 맞춰 홀에 당도한 내 앞에 저 멀리 허겁지겁 뛰어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어라, 저게 누구? 맙소사, 그와 그의 어시스턴트다. 그런데 그가 늦긴커녕 리허설 시각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뛰어가고 있다고? 더 부리나케 뛰어 그를 따라잡았다. “마에스트로, 안녕하세요!” 그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답한다. “어, 너! 결국 제 시간에 왔네? 잘됐다, 빨리 가자!” 맙소사, 이 남자. 정말 종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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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일인지 한 마디도 대충 지나가는 법 없는 꼼꼼한, 이전엔 상상도 못한 그의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보통 이런 자세한 리허설에서 지휘자들은 주로 ‘이 부분은 이런 식으로, 저 부분은 저런 식으로’ 하라고 방법론을 곁들여 설명한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 노래를 불러주며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를 전달했고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즐기며 스스로 귀를 열도록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간혹 던지는 그의 말이 이런 과묵함에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하기도 했다.
피아노의 긴 오프닝 카덴차가 끝나고 오케스트라 튜티가 나오는 부분에서 그는 이런 주문을 했다. “무언가(無言歌), 가사가 없는 노래들도 있죠. 그렇다면 이건, 가사가 아주아주 많은 노래입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는 설명 없이, 그의 의도가 오케스트라에 단박에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8분의 6박자 춤곡의 시작을 알리는 트럼펫의 팡파레에는 이런 주문을 했다. “이전까지 ‘이게 맞나 아닌가, 이래도 되나 저래야 하나’ 하던 음악에 당신들이 여기서 이렇게 선언하는 겁니다. ‘This is it!’”
하지만 그의 진정한 마법은 다른 곳에 있는 듯 했다. 프렌치혼의 솔로가 나오는 부분이었다. 로테르담 필하모닉의 프렌치혼 주자는 유럽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대가. 그의 솔로가 시작되고 몇 마디가 흐르자 그가 지휘봉으로 보면대를 치며 음악을 끊는 거다. “아니, 당신이 모든 걸 다 망치고 있잖아.” 일순간에 정적이 흘렀다. 그가 말을 이었다. “너무 아름답잖아요!” 모두가 소리내어 웃었다. 백명 가까운 사람을 들었다놨다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동시에 그들의 기를 살려주는 것을 잊지 않는 소프트 카리스마. 그것이야말로 이 리허설 이전에도 이후에도 다른 사람에게서 전혀 본 적 없는 실로 압도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언제쯤 그와 다시 이런 리허설을 해볼 수 있을까? 그와 앞으로 몇 번을 더 같이 연주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리란 것, 그것이 문제로다!
손열음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