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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부터 중앙SUNDAY에 손열음의 글이 실렸다. 그때마다 반응은 뜨거웠다. 명곡과 명연주자들, 때로 소박한 일상을 종횡으로 누빈 글에는 일반인은 물론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식안이 묻어나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를 섭렵한 세계적인 피아노 실력, 그리고 그와 더불어 감성적이고 지적인 이미지는 손열음의 음악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해 준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출간기념 작은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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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슈베르트의 가곡 ‘봄에’. 자신이 직접 편곡한 버전으로 연주했다. 그녀의 손길 아래 피아노는 널찍한 시냇물처럼 편안하게 흘렀다. 왼손과 오른손의 미묘한 엇갈림, 그 낙차가 생명력을 부여하는 듯했다. 곡이 끝나고 손열음이 마이크를 들었다. “무대 위에서 좀처럼 떠는 일이 없는데 첫 책의 출간 음악회라 떨린다”고 소감을 말했다. 하노버에서 발견한,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봄에‘를 설명한 뒤 자신이 직접 의역한 에른스트 슐체의 시를 낭송했다.
이어진 곡은 슈만의 어린이를 위한 앨범 Op.68 중에서 21, 26, 30번이었다. 연재 첫 회에서 다룬 작곡가가 슈만이어서 이번에 선곡했다고. “간단하고 기교적으로 쉬워서 잘 연주되지 않는 이 곡에 슈만은 별 셋을 표시함으로써 만족함을 표현했지요.” 단순하지만 꿈꾸듯 전개되는 연주를 들으니 온몸으로 나른함이 퍼져가는 듯했다.
다음 곡은 알캉의 ‘이솝의 향연’이었다. “요즘 피아니스트의 기교들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치기 힘든 곡”이라고 소개한 손열음은 목과 손가락을 가볍게 풀더니 연주를 시작했다. 가공할 만한 연주였다. 대담하고 강렬한 에너지의 표출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유리알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듯한 악구도 일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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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곡 중에서도 우수를 띤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곡은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띤 듯한 느낌을 던져준다. 손열음의 연주에서는 울적하면서도 묘하게 위안을 주는 부분이 감지됐다.
손열음은 “하노버 국립음악원의 스승인 아리에 바르디의 가르침과 영향이 이번 책의 1/5은 차지한다”고 설명하며 그와의 첫 레슨 때 연주했던 곡을 소개했다. 쇼팽 전주곡 Op.24의 13번이었다. 자분자분 위로하는 듯 다독이는 듯 흘러가는 연주는 어느덧 미니 콘서트의 막바지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곡은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춤곡’이었다. 호로비츠와 라흐마니노프의 2피아노 버전은 있었지만, 아리에 바르디의 친구인 파흐만(Y. Vagman)이 1대의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했다(“아마도 세계 초연일 것”이란 말도 했다). 그녀가 최근 열중하고 있다는 이 작품을 들으니 피아노 두 대의 몫을 하느라 손이 바빠 보였다. 중간부와 느린 부분에서는 비애감이 물씬 풍겼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청중들과의 질문 답변 시간이 이어졌다. 초등학생부터 중장년 여성 남성까지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현재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인지 새삼 깨닫게 한 자리였다. 단지 작곡가의 음표를 재현하는 수동적인 연주가가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야말로 작금의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계를 견인하고 있는 거대한 엔진이리라.
글 류태형 클래식 평론가·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kinsechs0625@gmail.com 사진 최정동김상선 기자,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