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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았을 때에 대한 기억은 오래가는 경우가 많다. 경제전망을 하거나 기업의 성과를 예측할 때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0년대 중반 세계경제가 좋았던 당시와 비교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비교 상의 목적이라 해도 듣는 사람들은 세계경기가 얼마 안 있어 좋아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와 기업성과도 그때와 비슷하게 나아질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상황이 바뀌어 당분간은 현재의 성장세가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사실 위기 후유증에다 주요국의 고령화, 브라질·러시아와 같은 신흥국의 부진 등으로 두드러진 성장세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수출, 한국만 부진하지 않아
세계경제의 긴 흐름에서 볼 때에도 최근의 성장세는 결코 나쁜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 수년간 이어지는 3%대 초중반의 세계경제 성장률은 중국이 본격 등장한 90년대 이후 세계경제성장률에는 약간 못 미치지만, 80년대 이후 35년간의 세계경제성장률 평균과 일치한다. 2000년대 중반의 세계경제호황은 중국의 고성장과 선진국의 자산 버블 등 세계경제 성장세를 높이는 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초래된 예외적인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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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4개월째 감소세를 이어오면서 우려를 사고 있는 수출을 보자. 과거 우리 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날 때 수출의 역할이 컸던 만큼 수출회복에 대해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저성장세와 성장세에 비해서도 낮아진 교역증가율, 중국의 성장방식 변화 등을 고려할 때 세계교역이 크게 늘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유가까지 겹치면서 우리나라 수출성과가 부진한 것은 맞지만 아직은 점유율 등의 면에서 세계교역의 추이를 따라가는 정도로서 특별히 우리나라만 부진하다고 할 수는 없다.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2011년까지와 같이 매년 두 자리 수의 수출증가율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플러스증가율만 기록해도 다행일 정도다.
경제, 부진하다지만 지금이 정상
언제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은 언제나 당혹스럽다. 미흡하지만 경기회복세는 이어지고 있다. 지금보다 다소 나을 수는 있겠지만 경제주체 전반이 만족스러울 정도의 경제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내경제가 부진하다지만 국제금융시장이나 지정학적으로 세계경제에 특별한 악재가 없는 현재가 정상상태일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얼마든지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세상은 팍팍하게 바뀌었는데 달콤한 지난날의 기억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과거의 프레임을 리셋할 필요가 있다. 과거 호시절을 맞아 좋은 성과를 거뒀다면 지금은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진검승부를 해야 할 때다. 경제정책이나 기업의 업무계획은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기가 나아지면, 환율이 좋아지면, 수출이 활력을 되찾으면 해결될 거라는 전제하에 일을 해나간다면 그 정책담당자나 사업책임자는 230미터 비거리만 기억하면서 ‘왜 이러지?’를 되뇌는 골퍼와 다름이 없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