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안전핀 뽑힌 세기말을 발가벗기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11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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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의 ‘추기경과 수녀’(1912), 69.8 x 80.1 cm
서른다섯의 개업한 의사이고, 아름다운 아내의 듬직한 남편이자 귀여운 딸내미의 다정한 아빠. 그날 밤 아내와의 치기 어린 대화가 있기 전까지 프리돌린의 삶은 모든 것이 옛날 그림처럼 평범하고 아름다웠다. 잊고 있던 연애감각을 되찾으려고 장난같이 시작한 대화가 수위를 넘고 말았다. 아내의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숨겨진 욕망” 고백에 그는 당황하고 분노한다.

19세기 말 프리돌린의 시대는 “거리에는 창녀들이 그득했지만, 내 집안의 여자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17살 순결한 몸으로 자신과 약혼했던 아내에게 그런 환상이 있었던 것을 그는 용서할 수 없었다. 비록 자신은 그런 “숨겨진 욕망”의 시간을 주저 없이 탐닉할지라도.

이진숙의 접속! 미술과 문학 <11>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와 실레의 ‘추기경과 수녀’

아내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지인의 임종 소식을 듣고 급히 집을 나선다. 아버지의 시체 앞에서 망자의 딸은 그에게 뜻하지 않은 강렬한 애정을 표시한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이 거꾸로 욕망의 안전핀을 뽑아버렸으리라. 그뿐만 아니었다. 그 집에서 나와 걸어가는 길목마다 노골적으로 유혹하는 여인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밤, 그는 우연히 난교파티에 잠시 참석하게 된다. 파티 장소를 떠난 후에도 그는 자신의 체험을 믿을 수 없었다. 금지된 낯선 환락의 세계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단지 “봄이 오는 길목의 비엔나 밤거리에서 만난 욕망의 판타지”였는지 그에게는 모든 것이 모호할 뿐이다. 새벽녘에 돌아온 프리돌린에게 아내는 간밤에 꾼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다. 아내의 꿈은 더할 나위 없이 에로틱했고, 그가 경험한 현실보다 생생했다.

오스트리아 소설가 아르투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1862~1931)의 『꿈의 노벨레』(1925)의 줄거리다. 우리에게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의 원작 소설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아내의 꿈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는 조용히 한숨을 쉬며 말한다. “어떤 꿈도 완전히 꿈은 아니야.” 이 문장으로 그는 단숨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핵심에 도달한다. 꿈, 욕망, 무의식은 무엇보다도 강한 힘을 가진 실재이고 인간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이 최초로 인식되던 시대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진 적나라한 욕망을 다룬 슈니츨러의 작품을 보면서 프로이트는 슈니츨러가 자신의 문학적 도플갱어라고 생각했다.


비엔나의 왈츠는 위태로운 화합의 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미술계에서도 자신의 도플갱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 와 에곤 실레(Egon Schiele·1890~1918)가 그들이다.

세기 전환기의 오스트리아는 점점 강대해지는 신생 독일 제국에게 모든 면에서 뒤쳐지고 있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라는 늙은 왕으로 상징되는 바, 과거의 영광에 집착해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답답한 분위기가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하듯 비엔나의 아름다운 왈츠는 ‘위태로운 화합의 춤’이었다. 그 손을 놓으면 모두 다 적이 될 수 있는 위기를 겨우겨우 봉합하면서 19세기말의 비엔나는 버티고 있었다. 지는 해가 아름다운 노을을 만드는 것처럼, 19세기말의 비엔나에서는 정치적 좌절감이 거꾸로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합리적 인간 대신 감정과 본능을 지닌 심리적 인간에 대한 탐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그 동안 시민적 윤리에 은폐되어있던 욕망들이 아우성치면서 터져 나와 예술 작품이 되었다.

클림트와 실레의 시대는 같으면서도 달랐다. 스승 클림트의 화면은 영광을 기억하는 황금빛 물결이 찬란하지만, 실레의 화면은 몰락과 쇠퇴, 죽음, 재난,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 어두워졌다. 쇠퇴기를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자기 삶을 살아야 했고 사랑해야 했다. 실레에게는 차라리 쇠퇴의 순간이 가장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가 심사가 뒤틀린 인간이어서도 아니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인간이란 슬픈 존재이며, 이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연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쇠퇴의 순간에 모든 달콤한 환상은 덧없이 사라졌다. 화려한 아르누보 풍으로 그려진 클림트의 ‘키스’(1908)에서 에로틱한 에너지는 감미로운 황금빛 황홀경으로 승화되었었다. 그러나 실레의 작품 ‘추기경과 수녀’(1912)에서 붉은 에로스는 어두운 죄의 영역으로 추락했다. 추기경의 옷은 붉은색이고 수녀복은 검은색이다. 붉은 색과 검은 색의 만남은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불길한 만남이 되었다. 아름다운 것의 외피가 떨어져 나가 추한 것이 드러나고, 성스러운 기도가 끝난 순간에는 감출 수 없는 본능의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아닌 추기경과 수녀의 사랑이라니! 그것도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이라니. 사제복 속에는 견딜 수 없는 욕망으로 뒤틀린 육체가 있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차라리 이들이 클림트의 두 인물처럼 그저 사랑에 몰입하고 있다면 우리도 덩달아 사랑을 그저 탐닉하기만 했을 텐데. 무엇보다도 그림 속 인물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사랑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어둠을 찾아 깃들었겠지만, 어둠 속에서도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다.

압권은 수녀의 시선이다. 저 눈은 죄를 맛 본 눈이고, 죄에 빠뜨리는 눈이다. 못 볼 것, 봐서는 안될 것을 봤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눈이다. 모든 것을 부당하게 만드는 눈이다.

‘금기’라는 옷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
그런데 실레가 그린 두 남녀는 진짜 추기경과 수녀일까? 슈니츨러의 『꿈의 노벨레』에 힌트가 있다. 프린돌린이 일종의 가면 무도회인 난교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선택한 복장은 순례를 떠나는 수도사의 복장이다. 막상 파티장에 가보니 광대·기사·여왕 등 가면무도회에 어울릴 법한 차림 외에도 근엄한 재판관 복장, 프리돌린처럼 수도사 복장과 수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욕망에 들끓는 난잡한 장소를 가장 도덕적이고 금욕적인 복장의 사람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금기가 강할수록 욕망의 충동은 더 강해지는 법이고 뚜껑을 굳게 닫을수록 더 세게 끓는 법. 이 극한의 대조는 결국 모든 ‘금기’ 자체에 대한 강력한 인식, 혹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욕망의 보편성을 확인해줄 뿐이다.

수녀(혹은 수녀복을 입은 여인)는 두려움에 떨며 주위를 살피다가 결국 우리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이로써 그녀의 욕망은 끝났다. 타인의 시선은 감옥이다. 그렇게 여인이 다시 상식의 감옥에 갇히고 말았기 때문에 추기경(혹은 추기경복을 입은 남자)의 욕망은 좁은 칼날 위에 선 것처럼 더욱 극단적이고 조급해졌다. 쫓기면서 정신없이 먹는 음식처럼, 그저 욕망이 채워지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과정에서는 어떤 상승도, 감각적 고양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적이고 정상적인 욕망은 극한의 금기에 내몰려 일그러진 모습으로 드러날 뿐이다. 실레는 그럴 수밖에 없는 그런 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그린 것은 진짜 수녀와 신부가 아니라 ‘금기’라는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끊임없이 못 견뎌 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프리돌린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결코 예전 같을 수는 없었다. 그는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지점을 통과했다. 욕망의 존재는 너무도 분명했으니까. 어떤 꿈도 완전히 꿈은 아니니까.


이진숙 문학과 미술을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각 시대의 문화사 속 인간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다. 『위대한 미술책』『미술의 빅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