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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상실의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 방법이 어떻든 그 과정은 꼭 필요하다. 중요한 사람을 잃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예정된 상실이다. 암에 걸려 오래지 않아 사망할 것을 알고 있는 경우다.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모두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예상치 못한 상실이다. 사고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다. 아침에 웃으면서 나간 사람이 영원히 떠나 버린다. 예정된 상실에 비해 훨씬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받아들일 준비도 돼있지 않다. 슬픈 마음조차도 들지 않고 먹먹하기만 해서 그게 더 이상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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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지난해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며 떠난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에 빠져 가족을 떠난 지 어느새 1년이다. 일반적으로 1년이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정상적 과정을 거쳤다면 남은 이들은 대개 현실로 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족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광화문 앞에, 팽목항에 서 있다. 예기치 않은 상실이었다는 것을 하나의 이유로 대기엔 충분치 못하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애도의 과정을 정상적으로 치를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못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니 여전히 가족의 마음 안에서 애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그만 마음에 묻어둡시다”는 말은 옆에서 섣불리 할 말이 아니다. “우리는 옆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세요”라고 해야 한다. 어설픈 위로나 충고, 판단적 언행은 도리어 이해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줄 뿐이다.
유가족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 전체의 집단적 상실에 대한 애도를 위해 정치와 셈법을 떠나서 솔직함과 진실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감정을 숨기고 억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나중에 더 큰 혼돈을 부를 뿐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애도를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