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삶이 그러하듯, 피아니스트는 늘 혼자다

중앙일보

입력 2015.04.12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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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은 지난 주 연주여행 중 닷새 사이 네 번이나 항공편이 취소 돼 공항 라운지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그가 9일 페이스북에 올린 상트 페테르부르크 공연장에 걸린 공연 안내판.
비행기가 또 취소돼 공항 라운지에 들어와 앉았다. 일주일 새 네 번째다. 첫 번째 취소된 비행기는 지난 토요일, 통영발 서울행이었다. 덕분에 다음 날 새벽 세 시에 호텔을 나서 버스를 여섯 시간쯤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독일로 출국해 그곳에서 러시아로 갔다가 러시아에서 다시 독일을 거쳐 미국으로 떠나는 게 원래 계획이었는데, 러시아로 들고 나는 비행편을 항공사에서 없애버렸다. 시간대도 좋고 가격도 좋은 스케줄을 찾느라 이틀이나 걸렸건만.

다른 비행기를 다시 알아보려고 내가 예약했던 인터넷 여행 포털 사이트에 전화를 걸었더니 당최 일이 진행이 안 된다. 우리가 항공사의 승인을 받아야 돼, 그런데 지금 항공사가 연결이 안 되네, 대신 우리 수퍼바이저라도 연결해 줄게, 근데 수퍼바이저도 연결이 안 되네. 어쩌지, 다시 전화해 줄래? 결국 일주일 동안 일곱 번, 총 여섯 시간을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한 다음에야 겨우 환불을 받았다. 총 250불 정도. 이렇게 싸다니. 뭔가 더 억울하다.

공항 라운지에서

시계를 보니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호텔을 나선지 정확히 26시간이 지났다. 또 새벽 세 시에 나오느라 잠도 한 숨 못 잤는데. 마지막으로 제대로 침대에 누워본 게 언제더라.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제일 처음 갔던 건 1997년,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그 때 난 7월 말 미국 보스톤에서 열리는 여름 음악캠프에 참가했다가 8월 말에 곧장 러시아로 건너가 청소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김포공항을 떠나 뉴욕으로 가는 열네 시간의 비행. 한 달 넘게 엄마를 못 본단 생각에 계속 눈물이 나는데 사람들 앞에서 우는 건 너무 싫어 계속 참았다. 식사가 끝나자 기내에 불이 꺼졌고 그제서야 맘 놓고 울었다. 한참을 울었는데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 거다. 그날 이후로는 어떤 비행도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보고 싶던 엄마가, 내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건너간 다음 날 한국에서 나를 보러 왔다. 사흘 동안 엄마하고 한 몸이 된 것처럼 꼭 붙어서 잤는데 그 때의 엄마 품처럼 강렬한 것은 세상 천지에 다신 없었다. 개학을 앞둔 엄마는 다시 떠났고 엄마가 떠난 그 날의 그 느낌이….

2012년의 손열음과 어머니 최현숙씨(왼쪽).
혹 외롭거나 슬픈 감정이었느냐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외롭고 슬프게 느낀 적은 다른 때 한번 있었다. 2005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 음악회장 로비에서 결선 진출자를 발표하던 때. 한 명씩 호명될 때마다 주인공 가족과 친구들의 환호성이 음악회장을 떠나가라 울렸다. 이윽고 “00번, 열음손”이 불렸는데 그 순간의 그 어마어마했던 정적. 새카맣게 잊고 있던 그 열네 시간의 비행이 떠오를만큼 길게 느껴졌다. 서둘러 그 곳을 나서 시내 한복판의 북적이는 맥도날드에 들어가 앉았다. 자축의 햄버거를 먹으려던 순간 유난히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가 저 멀리서 힘에 부친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바로 앞 테이블에 앉은 할아버지는 주문대로 가는 대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시어 보이는 새파란 사과였다. 그리곤 아주아주 천천히 그 사과를 먹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다 먹는 데에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 먹고 남은 사과를 들고는 또 천천히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열고 다시 나가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다 더 어릴 적에도 잘만 참았던 눈물을 그만 쏟아내고 말았다.

그 날 뿐이었다. 더 이상은 혼자라는 것이 딱히 슬프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건 실은 더없이 편한 거다. 온갖 걸 모두 혼자 하다보니 여행일정 하나 짜는 것도 나 스스로 말곤 믿을 사람이 없다. 지난 달에도 한 항공사 데스크의 직원이 못 찾는 비행기를 내가 찾았으니까.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며 “여기 있잖아, 이거로 해 줘” 하는 날 보며 그녀가 “너 이거 어떻게 찾았니?” 하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하다 못해 연주도 무대에 혼자 올라가는 독주회가 오히려 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모두 내가 혼자 감당하면 그 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나 앙상블 연주에서는 행여나 남에게 피해를 입힐까봐 아니면 혹여 남으로부터 책임을 추궁당할까봐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 않는다. 그래서 독주회가 더 좋냐고? 당연히 아니다. 독주회 한 번 할 에너지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열 번에 앙상블 연주 스무 번은 하겠다. 그럼 혼자가 좋은 건 아니네? 음, 그런가? 뭐지.

그날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그 느낌. 나를 둘러싼 세상이 모두 한없이 차가운 그 느낌. 아직도 이따금씩 떠오르는데 주로 무대 위에서다. 이 순간 공기 중으로 증발해 버렸으면 하는 그 기분. 아무리 내가 무대를 좋아하고 연주하는 순간을 제일 행복해 하더라도 꼭 한번씩은 찾아오는 기분이다. 우리 피아니스트들은 특히 ‘혼자됨’을 잘 안다. 현악기나 관악기 주자는 하물며 ‘반주자’라도 대동하는데 우리는 줄곧 혼자다. 연습할 때도 연주할 때도 또 그 사이사이에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꽤나 아찔한 느낌이다. 많게는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완벽하게 혼자라는 그 사실. 가족도 친구도 전화기도 악보도 아무것도 내 곁에 없는데 나는 무조건 멈추지 말고 계속해야 된다는 그 사실. 그 사실이 더 잔인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게 ‘산다는 것’하고 너무도 똑같아서다. 인생이라는 무대에 던져진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그러니 괘념치 말고 계속 해야할 테지.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한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에피소드의 제목이 그랬다. ‘You are (not) alone.’


손열음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