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믿음] 아픔과 믿음

중앙일보

입력 2015.04.12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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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에 고난이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세상에 괴로운 고난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선하지 않거나 전능하지 않다는 증거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건 정당한 질문이고 진지한 고민과 답변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먼저 전제한 후 고난의 이유를 묻기보다는, 고난을 먼저 경험하고 고난의 이유를 찾는 중에 하나님에 대해 생각한다. 이론적이고 관념적인 철학자들이 접근 방식과 달리 많은 보통 사람은 실존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문제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인생에 고난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간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게 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에 대해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종교는 절재적인 존재를 믿는다. 하지만 종교는 절대자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생을 말하고자 한다. 하나님을 믿지만 관념적 차원에서 하나님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고, 인간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의미와 역할을 찾고자 한다. 현실에 적용하지 않은채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가지론적이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속성은 모두 인간에게 적용했을 때 의미가 있는 개념들이다. 선함, 인자함, 긍휼함, 전능함, 신실함 등등 말이다. 그 외의 속성은 인간이 알기도 어렵거니와 설령 안다 해도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달의 이면이 존재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진지한 종교적 대화는 하나님에 대해 말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인생에 대한 진지한 대화에서 시작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사는가. 아픔과 실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인간은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은 인간적인 질문이 아니고 매우 종교적인 질문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내부에서 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밖으로 나가야 답을 얻는다. 그 답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없는 아픔이 아니고 하나님이 있는 아픔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아픔을 사용하여 선한 목적을 이루신다. 아픔은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고 아픔 중에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요나는 풍랑 중에 하나님을 만났으며,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 네 번째 인물을 발견했다고 했다.

‘한 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봄부터 울었다’라는 싯귀처럼 인생 속 아픔의 경험이 진지하고 강력한 신앙을 가능하게 한다. 눈물의 빵을 먹어본 적이 없는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처럼, 눈물을 흘려본 적 없는 사람은 신앙을 제대로 말할 수 없다. 신앙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드는 면도 있지만 성숙한 인간이 신앙을 갖게 하는 면도 있다. 이 시대 신앙인들은 열정·열심·헌신 같은 덕목을 강조하려는 경향이 많은데,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러한 열심을 통하여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 내지는 도피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빈 그릇이 요란하다고, 내면이 비어있는 신앙일수록 더 시끄러울 수 있다.

아픔은 영혼을 성숙하게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도 아픔을 피할 수 없었다. 오히려 당신이 당한 고난으로 온전함을 얻었다고 했다. 아픔이 신앙을 부인하게 되는 게 아니고 아픔을 통하여 신앙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아픔이 헛되지 않음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위로가 가능한 것이다.

김영준 소망교회 부목사를 지낸 뒤 2000년부터 기쁜소식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