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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또 미자하가 영공을 따라 과수원에 갔다. 미자하는 복숭아 하나를 따서는 한 입 베어 그 맛을 봤다. 달기가 그지 없었다. 그제서야 곁에 있던 왕이 생각난 미자하는 먹던 복숭아를 영공에게 건네며 맛 보기를 권했다. 영공은 무엄하다고 생각지 않고 또 한 번 미자하를 두둔했다. “참으로 나를 위하는구나.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내게 주다니”.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모습이 예전 같지 않아졌고 미자하에 대한 영공의 총애 또한 식었다. 이 때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러 영공 앞에 서게 됐다. 미자하는 다시 한 번 왕의 너그러움을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영공은 “저 놈은 본디 고약하다. 한 번은 내 수레를 훔쳐 타지 않나, 또 한 번은 자신이 먹던 복숭아를 내게 권하지 않나” 하며 크게 꾸짖었다.
여기서 먹다 남은 복숭아를 바친 죄라는 뜻의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말이 나왔다. 왕을 대하는 미자하의 행동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던 데 반해 미자하를 대하는 왕의 태도가 딴판으로 변한 게 화근이었다. 태도가 변한 왕이 문제인가, 아니면 변한 왕을 살피지 못한 미자하가 문제인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왕을 탓해야 소용 없는 일이다. 그보다는 변한 상황을 눈치채지 못한 미자하의 어리석음이 더 큰 문제라 하겠다.
중국에서만 부는 줄 알았던 반부패 사정 바람이 최근 우리 사회도 강타하고 있다. 사정당국을 탓할 게 아니라 그런 사정 바람을 몰고 온 환경 변화를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