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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런던의 대표 맞춤복 거리인 섀빌로우가 배경이다. ‘킹스맨’은 그 거리에 있는 양복점 이름. 비밀첩보 요원들의 아지트로 쓰인다. 여기서 베테랑 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사진)와 빈민가 출신 청년 에그시(태론 에거튼 분)이 세상의 파멸을 계획하는 악당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 분)을 처치한다는 줄거리다. 이 뻔한 스파이 영화에 강력한 눈요기가 되는 게 바로 킹스맨의 수트다.
스타일#: 영화 ‘킹스맨’ 속 수트
하지만 냉정해지자. 왜 이렇게 수트 몇 벌에 호들갑을 떠는 걸까, 더구나 54세 중년 배우를 새삼 호명하는 이유가 뭘까라는 거다. 그리고 분명한 한 가지는 우리가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신사복’을 감상하게 됐다는 거다.
요즘 남자 옷, 그야말로 중성적이다. ‘앤드로지너스룩(Androgynous Look, 성 개념을 초월한 옷차림)’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지 반세기가 넘으니 꽃무늬나 시스루는 그렇다 치자. 최근엔 아예 무릎길이 치마를 입고 나오는 컬렉션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또 마르기는 얼마나 말라야 입을 수 있는지. 라펠(수트의 깃), 바지단, 타이의 폭도 덩달아 슬림해진다. 그걸 소화해 내는 톱스타 남자 배우들의 모습은 누가누가 날씬한가를 보여주는 배틀로 비쳐진다.
멋쟁이 남자들의 교본이라는 피티워모(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일년에 두 번 열리는 남성복 박람회) 패션 역시 젠틀맨의 옷차림과는 거리가 있다. 색깔 있는 재킷과 셔츠(주로 블루다)에 중성색 면바지를 받쳐 입는 스타일링이 기본 중 기본. 그나마 요즘은 스포티즘의 영향으로 캐주얼이 대세다. 꾸밈 역시 과하다 싶을 만큼 튀는 양말이나 스카프로 포인트를 주는 게 일반적이니, 감각과 별개로 정석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여 ‘유니섹스’와 ‘믹스앤매치’의 대세 속에서 정통·클래식·수트의 3박자를 갖춘 남자의 옷은 희소가치가 충분하다. 남성성을 내세울 이유도 필요도 사라져가는 요즘이기에 더 그렇다. 영화 속 대사를 빌리자면 “수트는 신사의 갑옷”이라는데, 이젠 갑옷을 영광보다 부담으로 느끼는 남자들이 더 많아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글 이도은 기자dangdol@joongang.co.kr, 사진 20세기폭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