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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관에 있는 ‘밤의 기도(Night Vigil·2005/2009, 18분6초)’는 어떤가. 피터 셀라스 감독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영감을 받은 비올라가 오페라의 주인공이었던 남녀를 내세워 만든 영상물이다. 왼쪽 영상에서 여성은 계속 초에 불을 붙이고 있고, 오른쪽 영상속 남성은 관객 앞으로 점점 다가온다. 어두운 밤을 헤치고 다가오는 남자의 외적 여행과 그런 남자의 안위를 기원하며 향초를 올리는 듯한 여성의 내적 여행이 두 개의 스크린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삶과 죽음, 시간과 영원이라는 테마가 무심한 시간속에 펼쳐진다.
백남준 제자 빌 비올라와의 만남
5일 기자간담회에서 비올라는 4개의 영상이 한 세트로 이뤄진 ‘순교자(Martyr·2014·7분10초)’를 보여주었다. 각각 4대 원소인 흙, 바람(공기), 불, 물이 주는 고통을 참아내는 인간을 상징한 이 작품은 지난해 런던 세인트 폴 성당에 영구설치됐다(이번 전시에서는 거꾸로 들려올려져 물세례를 받다가 결국 승천하는 ‘물의 순교자’ 하나만 볼 수 있다). “순교자라는 말의 뿌리는 ‘증인’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다. 오늘날 대중매체 덕분에 우리는 종종 타인의 고통을 보는 증인이 되지만, 정작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죽음을 무릅쓰고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순교자들을 통해 신념을 위해 고통을 견딜 수 있는 게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결국 고통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선승과 만나 선지식도 공부했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강같은 것이다. 작은 개울에서 시작해 바다로 간다. 인류는 이 물줄기에 들어왔다가 언젠가는 사라진다. 뱃사공이 극락에 데려가 줄 때까지 우리는 뭔가 남겨야 한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탄생이 시작이 아니며 죽음이 끝도 아니다.”
그와 작업을 같이하는 부인 키라 페로프는 간담회 말미에 이번 전시를 위해 애써준 사람들을 하나하나 호명했다. 일반적인 간담회장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 영상철학가 부부가 삶을 대하는 진짜 철학은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빌 비올라(Bill Viola·1951~):
뉴욕 출생. 시라큐스 대학에서 테크놀로지와 미술과 철학을 공부했다. 백남준 같은 전위 예술가를 배출한 플럭서스 세대가 정신적 바탕이다. 74년 백남준이 에버슨 미술관에서 ‘TV부처’ 등을 선보일 때 조수로 일했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 대표작가. 뉴욕 휘트니 미술관, 도쿄 모리미술관, 파리 그랑팔레 등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다. 동양의 선과 서양의 테크놀로지를 영상으로 결합하고 있다.
▶빌 비올라전:
3월 5일~5월 3일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 & 3관, 무료. 최근 2년간 작업한 7개의 주요 영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