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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 생계수단, 자유까지 모두 잃은 그는 마침내 12월 22일 페트로그라드(현재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아내 두 딸과 함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오페라 ‘황금 수탉’과 자신의 미완성 오페라 ‘모나 바나’의 스케치, 단 두 개를 품에 안고 뚜껑도 없는 썰매에 올라 헬싱키로 도망왔다. 중년의 작곡가였던 그는 1년 동안 쉬지 않고 스칸디나비아를 돌며 피아노를 쳐 겨우 생계를 유지하다가 더 큰 금맥을 찾아 한 번 더 모험을 감행한다. 뉴욕행이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적 무곡’
2부에 쓴 곡들은 뭐가 있냐 물으신다면, 한마디로 말해 거의 없다. 생계형 피아니스트로 변신한 그에겐 더이상 새로운 곡을 만들어낼 시간도 힘도 없었다. 실로 25년동안 그는 다른 작곡가들의 짧은 작품 몇 개를 콘서트용으로 편곡해낸 - 당연히 자신의 콘서트 레퍼토리를 늘리기 위해서 한 - 것 외에는 딱 여섯 곡을 남겼다. 그 중 최후의 작품이 바로 ‘교향적 무곡(Symphonic Dances)’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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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썰매가 출발하고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다. 그런데 쉬지않고 내달리며 공격적인 음표들이 한층 더 사나워질 때쯤 갑자기 음악이 조용해진다. 곡이 시작한 지 3분도 채 안 됐는데. 각종 목관악기가 돌아가며 연주하는 반주 음형이 막처럼 드리워지면 홀연히 주인공 발레리나처럼 멜로디가 등장한다. 이 애달픈 선율을 연주하는 악기는 바로, 색소폰. 다름 아닌 미국의 상징. 아! 음악이 순식간에 25년을 지나 현재 시점으로 돌아왔구나.
어째서 그는 지난날 교향곡 2번에서 마음껏 사용한 클라리넷이나 잉글리시혼 같은 악기는 다 제쳐두고 평소 오케스트라에는 들어가지도 않는 색소폰을 넣었을까. 알려진 대로 그저 누군가의 제안 때문에? 가장 러시아스러운 멜로디를 부르는 이 미국 악기는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바뀌어버린 그 자신이었다. 실제 그의 인생 2부는 겉만 화려했을 뿐이었다. 재산도 명성도 되찾았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오로지 그리운 고향뿐이었다. 처음으로 미국에 장만한 집엔 가구부터 하인까지 모두 러시아산으로만 채웠다. 이 곡을 쓸 때쯤에는 급기야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리고는 2차 세계 대전이 발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어쩌면 그 즈음부터였을지 모른다. 자신앞에 다가오는 죽음과 마주한 것이. 그러지 않고서야 그 시기에 작곡한 세 곡 -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교향곡 3번, 이 곡 모두에 그렇게까지 강박적으로 Dies Irae(진노의 날: 레퀴엠의 한 파트)테마를 집어넣지는 않았을 테니.
죽음에 대한 그의 뚜렷한 공포는 2악장에 종류별로 묘사되어 있다. 등 뒤에서 지켜보는 듯한 섬뜩함, 마귀떼를 연상시키는 기괴함, 피할 수 없음에 대한 무력감과 필연적인 외로움까지…. 스페인 춤곡을 연상시키는 3악장은 황소를 노려보는 투우사의 비장함과도 닮았다. 그리고 감춰진 채 아주 살짝씩만 드러나던 진노의 날 주제는 갈수록 그 윤곽이 선명해진다. 그것도 서슬퍼런 금관악기들이 고음으로 쩌렁쩌렁 불러대도록. 그런데 어느새 다가온 죽음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 죽음. 그래서 두렵기는 하지만 슬프지는 않다.
그 혼자만의 슬픈 죽음은 오히려 1악장 마지막 부분에 나와버렸다. 조금은 앞뒤없이 등장하는 장조 선율은 다름 아닌 그의 교향곡 1번의 주제 선율이다. 이 작품의 초연이 평단의 혹평을 받고 그는 3년동안이나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원래는 장중하고 차가웠던 단조 선율은 이 곡에서 한없이 부드럽게 바뀌어 등장한다. 교향곡 1번을 알아도 얼핏 들으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스스로도 지워버리고자 무진 애를 썼을 그 곡,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차마 버릴 수 없었던 그 곡, 하나뿐인 고향과 너무나도 닮은 그 곡에 건네는 마지막 인사. 라흐마니노프가 인생 1, 2부를 다 합쳐 그려낸 것 중 최고로 슬픈 순간일 뿐 아니라 내가 아는 클래식 레퍼토리를 통틀어 단연 제일 슬픈 장면이다.
손열음 피아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