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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규어의 사전적 정의는 ‘관절이 움직여 다양한 동작을 표현할 수 있는 모형 장난감’이다. 하지만 홍콩의 핫토이 등 캐릭터의 정밀한 재현을 보고 있노라면 장난감이라는 호칭이 미안할 정도다. 만화ㆍ영화에서 파생된 전통 피규어 뿐만 아니라 곰인형을 차용한 베어브릭 등 패션 아이템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면서 일부 키덜트족만이 아닌 어른들의 장난감이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일부 식당과 카페를 중심으로 전시되던 피규어들이 번듯한 박물관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런 연유일 터다.
청담동에 개관한 ‘피규어뮤지엄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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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인연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정초등학교 동창인 이들은 어릴 적부터 피규어에 푹 빠져 있었다. 임 대표는 “아버지가 일본 출장을 다녀오실 때면 피규어를 사다주시곤 했다”며 “어렸을 땐 누구나 장난감을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기억을 이어오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구나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장난감과 마주하는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5~6층에 마련된 기획 전시 ‘마이 토이’(My Toy)는 이 같은 맥락에서 출발했다. 나의 오래된 친구, 특별한 나의 히어로를 소개한다는 컨셉트다. 유 대표의 히어로인 아이언맨과 임 대표의 건담 외에도 다양한 영웅을 만나볼 수 있다. 영화 ‘에일리언’과 ‘트랜스포머’에서 실제 사용됐던 무기 소품 외에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배트맨(1989)’에 등장했던 오리지널 배트모빌도 눈에 띈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건담 RX-93V. 유명 원형사가 한땀 한땀 빚어낸 2억원대의 명품이다. 유 대표는 “피규어도 미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비싼 가격은 아니다”라며 “당시에는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소성을 갖게 되고 누가 만들고 어떤 에디션인가 따라 소장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오는 7월 첫 전시를 마치면, 하반기에는 ‘올드 토이’(Old Toy) 기획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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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대표는 “사실 피규어는 일반인들에게 굉장히 어려운 전시일 수 있다”고 고백했다. 매니어들은 큐레이터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기에 일일이 설명하는 것 자체가 모독일 수 있지만,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면 이게 왜 중요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짐작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3~4층에 마련된 상설 전시실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다. 수퍼 히어로 존은 1951년에 출시된 아톰을 시작으로 철인 28호ㆍ마징가Zㆍ건담ㆍ파이브스타스토리즈(FSS)를 거쳐 95년 에반게리온에 이르기까지 연대기별로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성수동에 대형 수장고까지 마련한 이들이지만 살짝 연배가 높은 아톰 시리즈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유 대표는 “아톰 매니어인 배우 조민기씨에게 취지를 설명하니 흔쾌히 대여를 허락해주셨다”며 “앞으로도 테마에 따라 다양한 컬렉터들의 수집품을 함께 만나볼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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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공간을 기획해온 양유정(44) 관장은 “일본에 코믹북이 있다면 한국은 최근 뜨고 있는 웹툰이 무궁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 의미에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리지널 작품이 가진 예술성과 피규어에 투영된 기술, 관객의 감성이 어우러져 아빠의 꿈이 아이의 꿈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져야 하거든요.”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카페와 피규어샵을 무료 개방하는 것 역시 이같은 희망에서다. 이들은 이름에 ‘W’라고 붙인 이유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감탄사 ‘와우’(Wow)가 되든 피규어 ‘월드’(World)가 되든 관람객의 선택에 맡기고 싶다고 했다. 과연 이들은 ‘원더풀’(Wondeful)한 박물관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경직된 전시는 하지 않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고 관객과 함께 다듬어 간다면 그 역시 의미있는 행보가 될 듯 하다.
글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