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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물었다.
이어령의 知의 최전선 <19> 거시기 머시기
기자의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이 교수는 늘 하듯이 컴퓨터의 에버노트를 열어 자료를 꺼내 보여준다. “그런데 내가 직접 말하기에는 좀 거시기 해서 그러는 건데 몇 해 전에 미국 교민이 올린 글이야. 한번 읽어봐요.”
기자는 초등학교 학생처럼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신혼 초다. 남편과 뉴스를 본다. 뉴스는 물론 영어로 쏼라거린다. (남편 막 흥분해서) “야, 저놈 진짜 머시기 한데!!!…”(그리곤 말이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뒷말이 이어지질 않는다.)
(참다못해)“머시기가 뭔데?”
“아, 왜 그거 머시기 있잖아.”
“글쎄 그 머시기가 뭐냐고?”
“아, 그 거시기하고 머시기한 거 그거 몰라?”
“글쎄 그 거시기하고 머시기한 그거가 도대체 뭐냐고?”
밤을 새워도 그 머시기하고 거시기한 그것의 정체를 알아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아서였다. 남편은 수십 년 동안 하루종일 영어만 쓰다가 막상 집에 돌아와 한국말을 하자니 딱 떠오르는 말이 없으면 뭐든지 ‘머시기’로 표현했다.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나는 처음엔 그 머시기를 알아내려고 말도 시키고, 화도 내보고, 갈구기도 하고, 지근지근 약도 올렸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글쎄, 그게 머시기라니까’ 였다.
그렇게 같이 살다 보니 이젠 남편의 ‘머시기’를 다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올랐다. 한마디로 ‘척하면 머시기’의 내공이 쌓인 것이었다.
글을 다 소개할 수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거시기 머시기의 글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아, 오늘도 정말 머시기한 하루였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이 영어에도 머시기란 표현이 있다는 것이다. 와차마컬잇(whatchamacallit-what you may call it)이 그것이다. 이 말이 없었으면 미국 살면서 정말 머시기할 뻔했다.”
이 교수와 나는 모처럼 만에 한참을 두고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음 끝이 촉촉했다. 그러고 보니 이 교수의 글로 테마관을 꾸몄던 201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주제가 바로 ‘거시기 머시기’였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빡빡한 데카르트 아이들이 싸우는 이 지(知)의 최전선에서 질식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거시기 머시기’의 방독 마스크가 꼭 있어야 한다는 거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뭔가 분명히 우리가 서로 알고 있는 것, 말로는 잘 표현할 수 없는 안개에 쌓인 그 무엇 말이지.”
셰익스피어를 낳은 영어지만 그걸 말하려고 하면 ‘what you may call it(이걸 뭐라고 부르지)’처럼 한참 긴 문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한국말로는 그냥 ‘거시기’ ‘머시기’ 라고만 하면 다 통한다. 이 교수가 덧붙여 말했다.
“정 부장, 서양 사람 뒤통수 보고 따라가느라 참 힘 많이 들었잖아. 개화기 때부터 지금까지 말야. 그런데 스마트폰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인데도 이걸 좀 보라구.”
미국산 거시기 머시기의 이름이 붙은 초콜릿(사진)이었다. ‘와차마컬잇(whatchamacallit-what you may call it)’.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초콜릿이었지만 언젠가 한번은 이 교수를 모시고 함께 먹어보고 싶었다.
글 정형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