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자와 다케시 일본 라인야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개입 자제"만 반복한 정부
정부의 첫 유감 표명은 일본의 두 번째 행정지도로부터 20일 뒤인 지난 10일에야 나왔다. "일본의 행정지도가 지분 매각 압박으로 '인식'되는 점에 유감"(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이라면서다. 일본이 실제 압박한 건 없지만 여론의 인식이 그러하니 유감이란 취지다. 그러면서 "강력 대응"을 시사했지만, 이 또한 "차별적이고 부당한 조치가 있을 경우"를 전제로 했다.
별도의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정부 내에선 "네이버가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진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기조가 여전하다. 전문가들의 상황 판단과는 딴판이다. 전문가들은 "설사 네이버가 지분을 팔고 라인 야후에서 손을 떼는 게 남는 장사라고 하더라도 기업의 자율적인 결정이 아닌 일본 정부의 행정지도를 따르는 형태로 진행되는 건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한다.
"이번 사태가 윤석열 정부의 최대 외교 성과로 꼽히는 한·일 관계 개선에 누가 될까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1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에 경제안보를 담당하는 3차장실이 신설됐는 데도 이번 사태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있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1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라인야후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일본의 행정지도에 지분을 매각하라는 표현이 없다고 확인했지만 우리 기업에는 지분매각 압박으로 인식되고 있는 점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일본이 뒤통수 친 격"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의 지분 매각 문제가 불거지자 "일본 정부가 '반시장적 조치'라는 뒷말을 낳을만한 개입을 굳이 시도해야 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경영권을 노린 게 아니다"란 입장을 내놨지만 "결국 총무성의 행정지도 결과가 네이버의 경영권 박탈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일본 내에서 9600만명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의 경영권을 한국 기업의 손에는 둘 수는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 아니냐"는 관점에서다.
박경민 기자
이는 "일본이 과연 한국을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보고 있느냐"는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은 외국의 개입으로부터 국가 기간 사업의 자율성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자율성'을 경제안보 전략의 핵심축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민·관이 일사불란하게 외국 기업을 몰아내는 모양새는 우방국을 대하는 자세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등 한·미·일 차원의 협력 노력과도 배치되기 때문이다.
손열 동아시아연구원장은 "결국엔 양국 간 신뢰의 문제"라며 "한국을 충분히 믿지 못하고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니 사실상 네이버에 지분을 정리하고 나가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차원에서 '일본은 한·일 관계 현주소를 진정 이 정도로 판단하는 것이냐'고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정부 2년 국민보고 및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일각에선 이달 말 서울에서 4년여 만에 재개될 것으로 보이는 한·일·중 정상회의가 파행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1년 만에 방한하는 기시다 총리와 윤 대통령간 양자 회담을 라인야후 사태가 잠식할 수 있단 것이다.
또 죽창가 부르는 정치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내용. 페이스북 캡처.
여당에서도 "일본의 네이버 축출 시도", "적성국에나 할 조치" 등의 발언이 나왔다. 이와 관련,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는 "신중하고 실질적인 외교가 최선인 상황에서 당장 국민의 환호를 얻기 위한 언행만 이어지고 있다"며 "정치권의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인야후는 오는 7월 1일까지 보안사고 방지책을 비롯해 총무성이 내린 행정지도에 대해 답변을 해야 한다. 최근 라인야후의 이사진은 전원 일본인으로 교체된 상황이다. 네이버가 지분 매각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전문가 사이에선 "네이버가 지분 정리를 결정하고 나면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더욱 줄어든다"며 "이제라도 협상을 측면 지원하는 등 부당한 이권 침해를 막기 위한 고위급 물밑 접촉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 기업이 일종의 보호무역 장벽의 된서리를 맞았는데 정부가 뒷짐을 지고 있는 건 너무 안일한 것"이라며 "네이버가 그간 라인에 쏟은 투자 비용을 충분히 회수할 수 있도록 일본의 차별 조치에 항의하는 건 물론, 우리도 일본 기업을 상대로 상응하는 조처에 나설 수 있다고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