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의 일대기를 그린 한명구 감독의 영화 '님의 침묵' 포스터.
개인과 시장의 자유를 중시해 '자유시장 경제의 수호자'라 불린 밀턴 프리드먼이지만 대중에게 그다지 인기는 없다. 아예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그는 왜 그렇게 선택의 자유를 목놓아 외쳤을까. 경제적 자유만이 정치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정치적 자유의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역사적으로 증명됐다"고 썼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자본주의를 택하지 않으면 정치적 자유는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 이유도 재밌다. 자본주의가 숭고하기 때문이 아니다. 정치적 자유가 존재하려면 기존의 체제를 바꾸자는 운동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경제적 자유가 없는 사회에서는 여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프리드먼이 생각한 자유에 대한 근본적 위협은 권력의 집중이다. 자본주의는 정치권력이 경제력과 결합해 권력집중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한다. 그래서 프리드먼은 애덤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경제주체 내부의 독과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커지는 것은 문제없지만, 시장의 경쟁 기반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등보다 자유를 앞세운다. 프리드먼은 "자유보다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없다. 평등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는 사회는 둘 다 얻을 수 있다"고 썼다. 그에게 평등이란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의미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무관심하지도 않았다. 사회 취약계층은 다 굶어 죽게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다. 프리드먼은 취약 계층에게는 기초 생활 보장이 필요하다고 봤고, 차상위 계층에 대해서는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3000만원을 기준(면세점)으로 30%의 소득세를 부과한다고 가정하자. 5000만원을 버는 사람은 600만원(2000만원*30%), 1억원을 버는 사람은 2100만원(7000만원*30%)의 소득세를 낸다.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은 900만원(3000만원*30%), 2000만원밖에 벌지 못한 사람은 300만원(1000만원*30%)의 보조금을 받는다. 프리드먼은 가격구조의 왜곡을 불러오는 최저임금제도보다 음의 소득세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은 정부 정책에 따라 심하게 출렁인다. 지난해 겨울 서울 남산에서 내려본 서울 아파트단지. 연합뉴스
프리드먼의 머리에는 '의도가 나쁘기 때문에 고통을 줘야 한다'는 식의 사고 자체가 없다. 어떤 정책에 대한 판단은 그 정책이 가져온 결과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의로운 정책인지, 악의가 깔린 정책인지 생각하는 건 가장 큰 실수"라고 썼다. 프리드먼은 1946년 조지 스티글러와 공동집필한 논문에서 "캘리포니아의 주택 임대료 규제가 궁극적으로 주택 가격을 끌어올려 정치인이 도우려는 가난한 사람에게 오히려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집값을 인위적으로 낮춘 결과 건설업자가 더는 집을 짓지 않게 되면서 집값과 임대료가 올랐다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
우리나라에서 신자유주의자를 자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유주의조차 그닥 인기 있는 사상이 아니다.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부당한 지배나 억압,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면 많은 시민이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정부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선에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역할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면 고개를 돌린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 때문일까. 정부가 나서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정부는 뭐든지, 효율적으로, 공평하게 처리해 줄 것이라 믿는다. 이런 판국에 정부는 누구보다도 바보 같고, 비효율적이며, 무언가에 손을 댈 때마다 재앙만 부른다는 '신자유주의 선언'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단 사상일지도 모른다.
하긴 왕의 목을 치며 자유주의의 토대를 닦은 경험이 없는 게 우리나라다. 프랑스 혁명은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바탕으로 일어났다. 미국 독립전쟁을 앞두고 버지니아 주지사 패트릭 헨리가 남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말은 자유주의의 상징이다. 반면 우리는 해방 이후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다. 개인의 자유나 시장 자율보다는 "정부는 뭐하나"에 더욱 익숙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경제는 케인스주의 일색이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도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자유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이야말로 프리드먼이 말한 '선택할 자유'를 시민에게 돌려줄 때가 아닐까.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외젠 들라크루아.
만해가 괜히 위대한 시인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보편적인 정서는 자유보다는 복종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복종이라는 시가 그리 인기 있고, 신자유주의자는 그렇게도 상종 못 할 인간 취급을 받는 것일 거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시장이 빛이요 진리라고 주장하지도 않았다. 정부보다 민간에 맡기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할 뿐이다. 사회 취약계층은 다 굶어 죽게 내버려 두라고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정의로운 마음이나 자비심을 이유로 들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이 고통을 겪는 것은 사회적 비용이 증가해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썼다. 따뜻한 말을 하지 않았다고 냉혈한 취급하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가끔 이런 욕을 먹기 때문에 하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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