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방위조약 체결이 임박했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조약이 중동을 재편하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사우디가 첨단 무기를 얻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반면 사우디가 미국과의 거래에서 이스라엘을 제외하는 ‘플랜 B’를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우디, 이스라엘과 관계 정상화하나
앞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지난달 29일 리야드에 도착해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합의 측면에서 함께 진행해 온 작업이 잠재적으로 완료에 매우 가까워졌다(potentially very close to completion)”고 말했다.
방위조약은 사우디 영토가 공격받을 경우 군사 지원을 제공하는 등 한·미 또는 미·일 간 군사동맹과 유사한 상호방위조약 조건을 맺는 것이 핵심이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대가로 미국과 방위조약 체결, 민간 핵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 허용 등을 미국에 요구해왔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가자지구 전쟁으로 논의가 중단됐던 조약이 체결되면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에 힘이 실리게 된다. 이스라엘이 최근 본토 공격을 주고받은 이란에 대응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AI와 민간 핵 프로그램 지원할 수도”
그러나 이를 위해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전쟁을 종식하고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에 동의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미국 상원에서 조약 승인이 어려워진다. 미 의원들 상당수는 2018년 사우디 요원들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자말 카쇼기를 살해한 이후 빈 살만 왕세자를 경계하고 있다. 원유 생산량을 줄여 유가를 유지하려는 사우디의 전략에도 불안해 한다.
그럼에도 세 나라가 합의에 도달할 동기는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외교 성과를 부각할 수 있다. 빈 살만 왕세자로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불확실성을 피할 수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중동 최대 경제국과 관계를 정상화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다.
“사우디, 미국이 한국과 공유하는 것 요구”
그간 미국과 사우디는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수용하는 대가로 사우디와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이스라엘에 제안하려 했으나, 플랜 B에 따르면 미국과 사우디의 거래 완료는 네타냐후 정부의 동의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 경우 바이든 행정부는 당장 역사적인 중동 정착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사우디와 파트너십을 강화해 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사우디 거래의 핵 부분은 사우디에 정제된 우라늄 분말을 가스로 바꾸는 공장을 허용할 수 있지만 사우디 영토에서 핵폭탄 제조 능력의 핵심 제약 조건인 우라늄 가스 농축이 허용되진 않을 전망이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사우디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한 바 있다.
“이스라엘 빠지면 미 상원 승인 어려워”
중동 연구소의 피라스 막사드 선임 연구원은 “최소한 사우디가 요구하는 것은 미국이 한국과 공유하는 것과 유사한 것(나토 상호방위조약 5조)이지만 사우디 영토 방위에 대한 더 엄격하고 공식적인 약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상원의 승인 없이는 안보 보장과 기술 지원 약속이 단명할 가능성이 높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외교 정책 고문을 지냈고 국제정책센터 부대표인 매트 더스는 “이스라엘 참여 없이는 상원 승인은 시작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일 “어떤 사람들은 이웃 국가들에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강요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들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어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정권과 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그 체제가 시오니스트들(이스라엘)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