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준 사회부 기자
민정수석은 생살여탈권을 갖고 있었다. 지금은 정치에 투신한 어느 검사는 인사에 ‘물’을 먹고도 민정수석에게 “수석님의 뜻을 잘 헤아려 열심히 하겠다”고 충성 문자를 보냈다. 민정수석에게 사극에서나 볼 법한 “존명”이라고 답장을 올린 경찰청장도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만나 민정수석실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사진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은 보고서 내용도 달랐다. 경제수석실, 사회수석실은 정부정책에 민심이 들끓어도 “이런 의견이 있다”는 식으로 손질해서 보고하고, 해법제시도 없다. 정책입안에 관여한 수석실이다 보니 자기부정을 할 수 없어서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은 “직설적으로, 해결책을 담아서 올렸다”(전 민정수석실 근무자)고 한다.
형식보단 내실이 있어야 한다. 민정수석실인지, 법률수석실인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민정수석의 전횡이 우려된다면 사정 기능은 분산해도 된다. 민심청취에 투입하는 행정관의 출신을 검·경 외에 경제부처와 기업인 등으로 다양화해 대통령의 눈을 틔워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청와대가 그랬다. 취임 1년 차에 21%(갤럽)까지 추락했다가 3년 차에 40%대로 극적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린 이면에는 민정수석실 행정관들의 발품이 있었다.
더 중요한 건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가감 없는 보고의 선결 조건이다. 한 전직 비서관의 경험. “대통령실에 근무해도 수석 외에는 대통령을 만나 보기 어려워요. 그런데도 민심청취 관련 보고서만큼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무자인 행정관을 직접 불러 보고를 받기도 했어요. 직접 챙긴 거지요.”
윤석열 대통령은 불통과 역정의 이미지에 둘러싸여 있다. 민정수석 부활은 검사 이미지를 강화할 염려도 있다. 그러나 이럴수록 행정관에게서 직접 보고받고, 격려 차원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대접하면 어떨까. 임기를 채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경청으로 신발 끈을 고쳐맨다면 반등의 길이 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