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이 대표의 말에는 선거운동 중 연일 쏟아낸 거친 말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실렸다. “차분해진 이 대표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다”(민주당 서울 지역 당선인)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같은 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으로 달려가 “김건희 여사 소환”을 외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도 다른 결이었다.
이 대표는 11일 당 지도부에 “당선자 모임보다 낙선자 위로 모임을 먼저 하자”는 제안도 했다고 한다. 민주당 최고위원은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국민이든, 낙선자든 위로하면서 민생 해법을 듣자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 대표가 총선 승리 후 첫 일성을 ‘로키(Low-Key)’로 잡은 것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명실공히 175석 ‘이재명당’을 이끌게 돼 정부·여당 탓만 하기 어려워진 상황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총선 이전에도 이 대표는 거대 야당의 당수였지만, 당내 지분은 제한적이었다. 비명·친문의 수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공천권을 쥔 이번 총선에서 친명계가 대거 당선되면서 민주당의 색도 ‘이재명당’으로 거듭났다는 평가다.
한 비명계 의원은 “향후 물가 등 민생 문제가 심각해지면 국민은 정국 주도권을 쥔 민주당에 ‘뭘 했느냐’고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이 대표의 공약이었던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1인당 25만원), 지역화폐 확대 등의 실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민주당 추산 13조원이 필요한데, 여당은 그간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한 포퓰리즘”이라고 맞서 왔다. 이 외에도 아동수당(월 20만원) 18세까지 확대, 고등학교 졸업까지 정부가 매월 10만원을 넣어주는 ‘자립펀드’ 등 현금성 공약이 많다. 민주당 관계자는 “선거 결과에 부응하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국민이 언제든 회초리를 들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대장동 재판 등 각종 사법리스크를 돌파하면서 3년 뒤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는 간단찮은 ‘정치 시간표’도 이 대표를 누르는 무게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180석으로 압승했지만, 부동산 3법 등 입법 독주에 나섰다가 역풍을 맞았다. 결과는 2021년 재·보선, 2022년 대선 및 지방선거 3연패였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학과 교수는 “친명계나 민주당의 독주가 부각되면 이 대표의 외연 확장에 지장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조국혁신당과 연합하거나 선명성 대결에 나서기보다는 당분간 거리를 둘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총선에서 정부·여당을 향했던 화살이 3년 뒤 자신에게 올 수 있다는 점을 이 대표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