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의대 정원 확정 앞두고…대학, 변수에 떤다

중앙일보

입력 2024.03.2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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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의대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사직서 제출에 나선 25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의 수납 창구 앞 환자 대기석이 한산하다. [뉴스1]

“내부에서는 아예 (배정된 증원분이) 감축되는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하자는 의견도 나옵니다.”
 
비수도권의 한 대학 처장은 25일 향후 의대 증원 계획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학별 정원 배정 이후 상수로 여겨졌던 ‘2000명 증원’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변수는 의대 교수와 학생의 반발이다. 이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소속 교수들은 앞서 예고한 대로 사직서를 제출했고, 24일 기준 전체 의대생(1만8793명)의 절반가량(48.5%, 9109건)이 유효 휴학을 신청했다.
 
정부는 여전히 “정원 조정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의대 교수·학생의 강경 기조가 지속될 경우 정원 문제도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날 정부가 미복귀 전공의의 면허정지 처분을 유연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히는 등 원칙 대응에서 협상 쪽으로 태도 변화를 보이자 이런 관측에 더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이날 교육부 관계자는 정례 브리핑에서 증원 조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추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예단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2000명 증원이 발표됐고,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변동된 게 없다”고 했다.
 

이주호 부총리(왼쪽)가 25일 경상국립대학교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의대 인증평가도 증원의 걸림돌로 꼽힌다. 의대 교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의평원은 교육부가 지정한 의과대학 교육 평가 인증 기관이다. 정기적 평가 외에도 정원이 10% 이상 늘어날 경우 별도의 평가를 시행한다.
 
전날 의평원은 성명서에서 “증원에 걸맞은 교육여건 조성이 선행돼야 하나 이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가에서 불인증을 받는 대학은 정원 감축 및 모집 정지, 학생의 의사국시 응시 불가와 더불어 폐교까지 처분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교육계 안팎에선 의평원의 ‘불인증’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수도권의 한 사립대 총장은 “의평원 입장에서도 불인증 의대를 양산하는 것은 큰 부담”이라고 했다. 교육부는 이날 의평원 성명서에 대해 “우려를 불식시키고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법적으로도 정원 조정의 여지가 남아 있다. 고등교육법 60조에 따르면 “교육부 장관은 시정 또는 변경 명령을 받은 자가 이행하지 않으면…(중략) 그 학교의 학생정원 감축, 학과 폐지 또는 학생 모집정지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교육계 사정을 잘 아는 한 변호사는 “엄밀히 말하면 대학이 증원분보다 감축해 신입생을 뽑더라도 교육부 장관이 ‘조치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다만 대학 입장에선 교육부와 관계 설정이 중요한 만큼 배정받은 정원을 먼저 줄이겠다고 나서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4월 총선이 의대 증원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대학들이 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신입생 모집계획을 제출하는 것은 총선 후인 5월 말까지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총선 이후) 증원에 드라이브를 거는 강력한 리더십이 사라질 경우 대학 내에서도 추진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사립대 총장은 “우선 내년도 의대 신입생을 위한 교육환경 개선과 투자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다만 총선 이후 교육부·정부의 의지를 잘 파악하는 게 숙제일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