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해야 사업비 더 받나"…늘리고픈 총장, 말리는 학장 갈등 분출

중앙일보

입력 2024.03.02 17:00

수정 2024.03.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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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의과대학 부속 건물 모습. 뉴스1

 
정부가 오는 4일까지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보유한 대학들로부터 증원 규모 신청을 받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증원을 희망하는 대학본부(총장)와 의대 학장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의대 증원이 여러모로 이득인 총장들은 큰 숫자를 적어낼 예정인 반면, 실제 교육을 책임져야 하는 학장·교수들은 수요 제출을 보류하거나 증가 폭을 최소화해달라며 막판 설득에 힘쓰는 모습이다.  
 
현재 의대 정원이 110명인 경북대는 총장이 “신입생 정원을 250~300명으로 늘려달라고 교육부에 전달할 생각”이라고 2일 공개적으로 밝혔으나, 의대 학장이 “성급하고 무모하다”고 비판하면서 갈등이 외부로 분출됐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이날 보도된 언론 인터뷰에서 “경북대의 경우 의대 교수 55%가 증원에 찬성하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경북대는 지난해 수요조사에서는 90명 증원을 희망했는데, 이번 최종 조사에서는 140명 이상의 더 큰 숫자를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권태환 경북대 의대 학장은 홍 총장에게 “저는 여러 차례 대규모 증원을 하면 교육이 매우 어려워진다고 말씀드렸다”며 인터뷰를 반박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여기서 “교육부로 보내는 서류 제출을 보류하거나, 현행(110명) 동결 혹은 의대 학장협의회에서 요청한 10% 증가 폭 안에서 제출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권 학장이 이 메시지를 대학본부 보직자 교수들과 의대 학장들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회원들에게도 공유하면서 온라인 의사 커뮤니티 등으로 퍼졌다.
 
권 학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총장님이 저에게 250~300명 증원을 언급하거나 (증원했을 경우) 교육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학교 안에서 논의하기 전에 외부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 속상하고 곤란해 메시지를 보내게 됐다”고 말했다.  


“80년대엔 240명도 수업” vs “그때와 비교 말이 되나”

권태환 경북대 의과대학 학장. 사진 경북대 의대 홈페이지

 
권 학장은 “우리 의대에서는 ‘현 상황에서 증원 찬성 논의를 하거나, 증원 수를 제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부에 보냈지, 증원을 요청한 적이 없다”며 “‘의대 교수 55%가 증원에 찬성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이 회의에서 ‘현재 교실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인 125명(15명 증원)까지 일단 받자’는 의견을 냈을 뿐인데, 마치 55%가 대규모 증원을 찬성하는 것처럼 (총장이) 말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홍 총장이 인터뷰에서 “1981년만 해도 한 학년 정원이 240명이었다. 그 시절 많을 때는 300명을 대상으로도 수업했으니 정원을 늘려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고 말한 것에 대해서도 권 학장은 반박했다. 권 학장은 “제가 82학번이어서 정확히 아는데, 당시 경북 의대 정원은 160명이었고, 정부가 30%를 추가해 208명이 됐다”며 “‘240명’이라는 숫자 자체도 오류이지만, 당시와 현재 의과대학 교육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큰 강의실에서 수업만 하는 강의는 이제 거의 없고 대부분이 조별 토의나 실습”이라며 “(대규모로 증원하면) 임상 진료 보는 교수들 교육 부담이 늘어 진료에 차질이 생기고, 학생들 임상 실습을 보낼 의료기관이 없는 점 등 수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이 세계 의학교육 기준을 따르고 있는데, 정원이 대폭 늘면 기준을 못 맞추는 학교들이 생겨 예전 서남대 의대처럼 폐교되는 사례가 생기지 않을까 염려된다”라고도 했다.  
 
권 학장은 총장에게 전송한 메시지에서 “총장께서 추구하는 교육은 어떤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렇게 해야(의대를 대폭 증원해야) 글로컬 대학이 되고, 사업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올 수 있나”라고 비판했다. “지금부터 저는 학장으로서의 수명은 이미 다했다”며 교수들의 동의 하에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지난 1일에는 전국 의과대학 교수협의회가 성명을 통해 각 학교 총장에게 교육부 기한까지 답변을 제출하지 말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국 40개 의대 중 33개 의대 교수협의회가 참여한 성명에서 “의대 정원 수요는 대학의 교육역량 평가, 의대 교수들의 의견 수렴 등의 절차가 필수적이지만, 교육부가 정한 시한까지는 이런 절차를 밟을 시간이 없다”며 “그러므로 ‘3월 4일까지는 제출할 수 없다’는 것이 대학 총장으로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만류에도 각 대학 총장들이 대규모 증원 수요를 제출하면, 이를 의대 학장이나 교수들이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없다. 앞서 지난해 이뤄진 수요조사에서는 40개 의대가 2025학년도에 최소 2151명에서 2847명 증원을 희망하는 것으로 취합됐다. 이는 정부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정하는 근거 중 하나로 활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