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과 국내외 전문가들은 "누가 배후이더라도 중동 전쟁의 위험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전날 레바논에선 이스라엘의 드론 공격으로 하마스 서열 3위가 사망하고,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는 한 달 넘게 홍해상 선박을 공격하는 등 중동 정세는 격랑에 휩싸였다. 미국은 확전 차단을 위해 4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중동에 파견하기로 했다.
이란 "혹독한 대가"...미·이는 연루 강력 부인
앞서 이날 2020년 미국에 의해 암살당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정예군(쿠드스군) 사령관의 4주기 추모식이 케르만 지역에서 열리던 도중 폭탄이 터져 최소 84명이 사망하고, 284명이 다쳤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테러가 1979년 2월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고 전했다.
미 정부는 이번 테러와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도 동맹국들에게 '이번 폭발과 우린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서방은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집단인 IS가 숙적인 시아파의 맹주 이란에 테러를 가했을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IS는 2018년 이란 혁명수비대 행진을 겨냥한 공격 당시 배후를 자처하는 등 그간 여러 차례 이란을 공격해왔다. 미 고위 당국자는 이날 "IS가 과거에 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테러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2020년 미군에 암살되기 전까지 IS 격퇴에 앞장섰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싣고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은 중앙일보에 "그간 이스라엘은 표적을 제거하는 '외과 수술식' 공격을 벌여왔다"며 "가뜩이나 가자지구 전쟁으로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런 테러를 벌였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IS가 이번 일을 벌였다면 이·하 전쟁으로 중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을 때, 그것도 이란의 군사 영웅 추모식 시점을 골라 존재감 과시에 나선 것일 수 있는데 다만 아직까지 배후를 자처하지 않는 점은 의아하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란 내 혼란 야기를 목적으로 한 이란 반정부 세력의 테러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이란, 실제 배후 무관하게 이스라엘에 보복할 것"
이·하 전쟁의 불씨는 중동 곳곳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레바논 남부에 있는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근거지를 공격해 4명을 사살했다. 이스라엘군은 전날에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외곽에 있는 하마스 시설을 드론으로 폭격해 하마스 전체 서열 3위인 살레흐 알아루리 등이 사망했다. 3일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알아루리 사망과 관련 "적이 레바논에 대해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한도, 규칙도, 구속도 없이 싸우겠다"고 했다.
홍해를 둘러싼 후티 반군과 서방의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 12개국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후티 반군이 계속 지역의 중요한 수로에서 생명과 세계 경제, 무역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협한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후티 반군은 지난해 11월부터 하마스 지지를 명분삼아 미사일과 드론으로 홍해에서 민간 선박을 잇따라 공격하고 있다. 지난달 31일엔 미군이 홍해에서 후티 반군과 교전을 벌여 반군 10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과 전쟁 중인 하마스와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은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친이란 군사 세력이다.
"중동전쟁 확률 높아져" "가능성 낮아"
지난 2020년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후 이란은 보복 차원에서 이라크 내 미군 기지 두 곳에 미사일 공격을 했지만, 일부러 사람이 없는 모래 사막을 타격해 확전을 피했다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