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2024년을 맞아 여론조사회사 갤럽에 의뢰해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17명에게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북한의 핵무기 개발 제재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45%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돈을 더 이상 쓸 수 없도록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수준의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16%로 집계됐다.
[중앙일보 2024년 신년 여론조사]
‘핵 동결만 해도 선물’에 반대 두 배
반면 “핵무기 개발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면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은 33%에 그쳤다. 이는 사실 핵을 동결하기만 해도 북한에 선물을 주자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미 개발해 놓은 ‘과거 핵’은 그대로 둔 채 핵무기를 더 진전시키지 않는 ‘미래 핵’ 포기만을 전제로 경제적 이득을 주자는 취지라 ‘북핵 용인론’과도 연결된다. 이번 조사에선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찬성보다 두 배 가까이 됐다.
이런 결과는 이번 조사가 김정은의 남한 점령 준비 지시가 보도된 12월 31일 이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대한민국 것들”과는 통일도 추구하지 않겠다는 김정은의 위협이 공개되기 전인데도 제재 완화에 반대하는 강경 여론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지난해에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다섯 차례 감행하는 등 도발 국면을 이어가면서 북핵을 실체적 위협으로 보는 국내 시각이 많아졌다는 뜻이 될 수 있다. 이런 인식이 ‘섣부른 당근’을 경계하는 여론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 성향별로는 자신이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의 77%, 중도 성향의 60%가 제재 유지 또는 강화 의견이었다. 반면 진보 성향 응답자는 절반이 넘는 52%가 제재 완화에 찬성했다. 이념 성향에 따라 이처럼 극명하게 엇갈린 의견은 김정은이 ‘남남(南南) 분열’을 위해 공략하는 주요 지점이기도 하다.
세대별로는 18~29세에서 제재 유지·강화를 지지하는 응답이 가장 높았고(75%), 30대가 뒤를 이었다(67%). 젊은 세대의 보수화 경향과 함께 청소년기에 천안함 폭침 도발 등을 목격한 영향일 수 있다.
절반 이상 “미·중 간 중립·균형을”
다만 이런 결과를 미·중 사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등거리 외교’를 주문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웠다. “미국과의 동맹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37%인 반면 “중국과 협력을 강화하고 중시해야 한다”는 응답은 6%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미 동맹 강화’ 의견이 여섯 배나 많았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현 정부의 외교 안보 정책 기조가 한·미 관계 강화에 다소 치우친 데 대한 불안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한·미·일 협력이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른 가운데 ‘차이나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으로도 풀이된다.
尹 외교·안보팀 2기 숙제는
이번 결과는 최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조태열 외교장관-조태용 국정원장’으로 진용을 새로 꾸린 윤 정부 ‘외교·안보팀 2기’의 과제로도 연결된다. 중앙일보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3일 15명의 국내 외교·안보 전문가들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를 물었다. 전문가들은 심화하는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한·미·일 협력 체제를 제도화·내실화 할 것을 주문하는 동시에 중국과의 ‘상황 관리’도 신경쓸 때라고 조언했다.
여론조사 어떻게 진행했나
이번 조사는 중앙일보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2023년 12월 28~29일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가상번호)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했다. 응답률은 14.6%이며 2023년 11월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별·연령별·지역별 가중값(셀가중)을 부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최대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