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는 원래 커피 재배에 적합지 않은 열대기후지만, 안데스산맥의 고지대 평원은 온화한 초가을 날씨라 커피 재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후반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예측 불가하게 바뀌며 갑작스레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시기와 장기간 가뭄이 이어지는 시기가 교차하게 된 것이다. 어느 쪽이건 안정적인 고산지대 기후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 농무부 해외농업국 자료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커피 생산량은 10년 전 평균보다 10~12만 톤 정도가 줄었다. 일반적인 커피 추출 비율로 따져보면 에스프레소 100억 잔 분량이다. 현지에서는 주로 볶지 않은 생두 상태로 수출하니 수출액 감소분은 5억 달러(약 6500억원) 정도지만, 이마저도 1인당 GDP가 6천 달러 수준인 나라의 농민들에겐 큰 타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콜롬비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재배하면 그만 아니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최대 생산국인 브라질도 기후변화로 가뭄피해를 겪어 생산량을 벌충하기에는 여력이 없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이다.
안 마시면 그만인 커피 얘기라기엔, 우리나라도 콜롬비아와 같은 강수 패턴 변화와 기온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열대지방의 국지성 소나기인 스콜(squall)과 유사한 강수 패턴이 한국 여름철에 관찰된 지는 이미 오래됐고, 올해 겨울은 예년과 비교했을 때 섬뜩할 정도로 포근한 날씨를 보인다.
다행히 인간이 주식(主食)으로 삼는 곡물은 재배지가 세계 각지에 많아 상대적으로 수급에 큰 무리가 발생하고 있진 않다. 그런데 전남 신안군에서 바나나를 재배하고, 경북 고령에서 한라봉을 재배하는 시대에 우리 농업은 정말 안전한 게 맞을까.
박한슬 약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