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피에르와 외제니 사보아 부부는 파리 근교 푸아시에 주말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기와 가스, 중앙난방과 온수가 공급되는 당시 첨단 주택을 의뢰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10여년간 연구했던 이른바 ‘근대건축의 5요소’를 적용해 1931년 완벽히 새로운 주택을 완성했다. ①필로티 구조로 건물을 지상에서 들어 올려 정원을 확장했다. ②기둥과 벽체를 분리해 내부공간을 자유롭게 설계했다. ③일조와 환경조건에 맞추어 건물 4면의 입면도 모두 다르다. ④옆으로 긴 창을 내 주변의 파노라마 숲 조망을 실내로 끌어들였다. ⑤옥상에 테라스 정원을 만들어 또 다른 자연을 창조했다.
그러나 완공 직후부터 사보아 부부는 비가 새고 벽이 갈라지는 부실에 시달렸고 난방 효과도 거의 없어 화창한 날에만 겨우 방문했다. 2차대전 기간 독일군과 미군에 징발되었고 전후에는 창고로 전락했다가 정부가 매입하여 세계문화유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애초 공사비의 2배를 소요했으나 거의 사용하지 못했으니 건축주로서는 실패한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주택은 생활을 위한 기계”라고 주장한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선언은 아이러니하게 성공했다. 혁명가의 희생으로 혁명을 완수하듯이.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