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사흘에 걸쳐 EV9을 시승했다. 판매량이 하락한 이유가 궁금했다. 시승차는 4륜 7인승 모델로 1회 충전 주행거리는 454㎞(복합기준)였다.
큰 차체, 충분한 주행거리 패밀리카
고물가, 고금리에 판매량 감소
주행 거리도 불만이 없었다. 시승차는 배터리가 81% 충전돼 있었는데 주행 가능 거리는 419㎞ 남짓이었다. 서울과 파주를 2차례 오갔다. 주차장에서 1시간 이상 히터와 에어컨을 번갈아 사용했는데 배터리는 1~2% 남짓 줄었다. 하루 저녁 이상 캠핑에 충분해 보였다. 다만 시속 80㎞가 넘어가는 고속 구간에선 조수석 유리창이 흔들리며 소음이 새어 나왔다. 차체 롤링과 흔들림도 있었으나 대형차임을 고려하면 평이한 수준이었다. 바닥에 깔린 배터리는 이동 시 차체를 붙잡아 주기도 했지만 무게중심이 빠르게 바뀌는 순간에는 소형 및 중형 전기차에서 느끼지 못한 흔들림을 생겼다.
시트는 훌륭했다. 운전석 마사지 기능은 장시간 운전 시 자동으로 작동하도록 설정할 수 있었다. 180도 움직이는 2열 스위블 시트는 차량 내부에서 간단한 작업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3열 시트를 접으면 다리를 쭉 뻗을 수 있어 이동형 사무실로 사용하기에도 충분했다. 3열 시트는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접을 수 있어 편리했다. 다만 메시 형태로 된 운전석 헤드레스트는 머리를 완벽하게 지탱하지 못해 만족스럽지 않았다. 기아는 실내 곳곳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고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듣지 않고선 이를 인지하기 어려웠다. 같은 맥락에서 럭셔리 차량이란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내장재 수준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판매량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은 건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사흘에 걸쳐 EV9의 단점을 꼼꼼히 찾아보려 했다. 몇 가지 끌리지 않는 구석이 있었지만 첫 대형 전기차로 선보이기에 상품성이 부족하단 느낌은 없었다. 뒷좌석 공조기와 차량 내 220V 콘센트 등 다양한 곳에서 소비자를 배려한 측면이 많았다.
그래서 시대를 잘못 타고난 차라는 게 이번 시승의 결론이다. 시승차는 9300만원 수준으로 보조금을 받으면 8000만원 후반대에 구입할 수 있다. 여기서 제조사 할인을 받으면 이보다 더 저렴하다. 높은 전기차 배터리 가격과 대형 차체를 생각하면 기아가 무리한 수준에서 가격을 책정했다고 보진 않는다. 하지만 고물가에 고금리가 겹치며 전기차 수요가 주춤한 시기에 대형 전기차를 출시한 건 기아의 전략 실패로 볼 수 있겠다. 출시를 반년 정도 앞당겼다면 EV9의 운명은 달라졌을까. 시승을 하면서 이런 질문이 꾸준히 맴돌았다. 이에 답하면 개인적으론 조금은 분위기가 달랐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