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전문가 랄프 비게르트
이랬던 사우디 경제에 올해 무슨 사달이 난 것일까. 네옴시티 건설 등을 계기로 제2의 중동붐을 기대하는 한국이 헛물을 켜고 있는 것일까. 국내엔 드문 사우디 경제분석가인 랄프 비게르트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 중동·북아프리카경제팀장을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사우디 경제 마이너스 성장세
‘고유가=고성장’ 등식 무너져
원유 감산으로 민간경제 위축
‘중동 불안’ 확산 여부에 촉각
‘고유가=고성장’ 등식 무너져
원유 감산으로 민간경제 위축
‘중동 불안’ 확산 여부에 촉각
요즘엔 원유값보다 생산량 중요
- 고유가에도 사우디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했다. 이 석유 왕국에 무슨 일이 있었나.
- “기자가 말한 대로 2023년 3분기(7~9월) 사우디 성장률은 -4.5%였다. 팬데믹으로 경제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2020년 3분기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원유 생산을 줄인 탓이다. 하루 100만 배럴 줄였다. 약 10% 정도를 줄인 것이다. 사우디 경제에서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내총생산(GDP)의 30~35% 수준인데, 10% 감산은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 사우디에서 고유가는 성장 엔진인데.
- “단기적으로 국제유가는 경제성장에 영향이 거의 없다. 원유 생산량이 문제가 된다.”
- 상식 밖이다. 사우디 정부가 국제유가를 기준으로 석유회사에서 로열티를 받는데도 가격상승보다 감산 여파가 크다니 놀랍다.
- “사우디 정부는 국제원유 가격을 바탕으로 최소 15% 정도 로열티를 받는다. 하지만 아람코 등 자국 석유회사의 요청을 받고 얼마 전 로열티를 인하했다.”
사우디 정부는 브렌트유 가격을 기준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이하인 경우 로열티를 20%에서 15%로 2020년에 낮췄다. 대신 70~100달러이면 로열티를 40%에서 45%로 인상했다. 또 100달러를 넘으면 로열티는 80%에 이른다.
미국 고금리 정책이 직격탄
- 2023년 7월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를 웃돌았다. 사우디 정부가 원유가격의 45% 정도를 로열티로 받았을 텐데, 채굴량을 하루 100만 배럴 줄였다고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할까.
- “앞서 말했듯이 석유 부문이 GDP의 최대 35% 정도다. 단기적으로 기름값보다 생산량이 중요하다. 감산 때문에 석유 부문 성장률이 올해 3분기에 -17%까지 낮아졌다. 반면에 비석유 부문이 플러스 성장세를 보여, 올해 3분기 성장률이 -4.5%까지 떨어지는 데 그친 것이다.”
- 원유 감산 외에 사우디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보인 다른 이유가 있을까.
- “사우디 통화정책은 미국과 맞물려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페그 시스템(1달러=3.75리얄)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국제 원유시장에서 원유가격이 달러로 표시되는데, 변동 환율제이면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이 2022년 3월부터 공격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이때 사우디 중앙은행도 긴축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고금리이면 사우디도 고금리다. 그 바람에 사우디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이 상당히 위축됐다.”
- 사우디가 원유 감산의 직격탄을 맞았는데, 감산정책을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까. 감산으로 국제유가가 올라도 사우디가 얻을 게 없을 듯한데.
- “S&P글로벌이 보기에 사우디는 2024년 말까지 감산을 유지할 전망이다. 자발적 감산을 앞으로 12개월 이상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가 둔화해 원유 소비가 줄어든다면, 국제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사우디의 감산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세계 경제가 (통화긴축이 낳은) 둔화에서 빨리 벗어나 원유 소비가 늘어난다면, 사우디 감산은 중단된다. 감산 지속이냐 아니면 중단이냐는 세계 원유 수요에 달린 셈이다.”
- 사우디는 네옴시티 건설 등 메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다. 결국 사우디가 자본(오일 달러)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는 것 아닐까.
- “사우디 탈석유 전략인 ‘비전2030’은 외국인 투자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외국인 투자가 눈에 띄게 늘어나지는 않았다. 아직은 오일 달러가 메가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자금줄이다. 당장 사우디가 자본 수입국이 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네옴시티 프로젝트 차질 우려
- 한국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사우디를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는 제2의 중동 붐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듯하다.
- “기자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지기 전에 ‘메가 프로젝트 덕분에 제2의 중동 특수를 누릴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스라엘-하마스 갈등이 걸프지역 어디까지 퍼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사태가 퍼져 사우디 등이 휘말린다면, 메가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물론 이스라엘-하마스 갈등 때문에 현재까지는 거대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너무나 큰 상황이다.”
◆랄프 비게르트=독일 태생. 포츠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경제의 경쟁력과 에너지 비용 등을 분석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중동 오만의 전기와 수자원 정책을 자문하기도 했다. 2004년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영입된 뒤에는 사우디와 UAE 등 걸프지역 핵심 국가의 경제 분석을 책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