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뻥 뚫린 국회대로=우선 거야(巨野) 더불어민주당에 막혀 번번이 정쟁화했던 다른 정책과 달리 의대 정원 확대는 민주당도 반대하지 않고 있다.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게 의대 정원 확대(10년간 4000명 확대)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지난 18일 정부 정책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했다.
나아가 친명계 좌장 정성호 의원은 “의대 정원 확충을 진짜 실행한다면 역대 정권이 눈치나 보다가 겁먹고 손도 못 댔던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전남 지역구 의원 10명은 지난 17일 “의대 정원 확대와 함께 전남권 의대 신설과 지역 의사제 도입을 병행해서 추진해야 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각론에서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민주당도 큰 틀에서 힘을 싣는 모양새다.
②흩어진 저항력=당사자인 의사 집단의 저항 동력이 3년 전에 비해 적어졌다는 진단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눈치나 보다가 겁먹고 손도 못 댔던’ 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전국민이 불안에 떨며 의료진에 기대던 시기였다. 정부 정책으로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는 건 커다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의사 집단과 대치 중 ‘의사-간호사 갈라치기 논란’을 일으키며 역풍을 자초했다. 의사들이 파업했던 그해 9월 2일 페이스북에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간호사분들이) 얼마나 어려우시겠습니까”라고 쓴 것이다. 결국 이틀만인 9월 4일 민주당은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만나 ‘의료 정책 원점 재검토’에 합의하며 정책은 실패했다.
하지만 지금 여권은 증원 규모를 못 박지 않는 등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다. 지난 5월 간호법 사태 당시 전국 50만 간호사의 압박을 겪은 반면교사 사례도 있다. 의사 집단은 14만명으로 간호사보다 숫자도 적다. 의협이 “총파업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강력 투쟁할 것”(17일, 이필수 회장)이라곤 했지만, 의료계에선 회의적인 반응도 감지된다. “국내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명백한 사실”(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이란 공감대 때문이다.
③호의적인 여론=국민 여론이 긍정적인 것도 여권 드라이브의 동력이다. 지난 16일 전국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넥스트리서치·매일경제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71.1%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지난달 시행된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의사가 반발한다는 소식도 반감 여론에 불을 지폈다. 시행 이튿날 의협은 자체 설문조사(의사 1267명 대상) 결과 55.7%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에 따라 수술실을 폐쇄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며 법안 개정을 요구했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의사들은 본인이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인 줄 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다만 “속도 조절과 정교함이 관건”이란 지적도 남아있다. 의료계와 대화 없이 증원만 밀어붙일 경우, 의료계 역시 장기 파업이란 강 대 강 대결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의사 집단은 대개 여권 지지자가 많다”며 “기득권으로 거칠게 몰아붙이기보단, 요구도 반영하면서 함께 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