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날 오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4%가량 오른 배럴당 86달러 수준에서 거래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 원유 생산지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 원유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고 있지만 새로운 중동발(發) 악재에 다시 상승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50년 전인 1973년 10월 이집트·시리아 등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은 ‘1차 석유파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아랍 산유국이 이스라엘을 돕는 국가에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하고 석유 가격을 4배가량 인상하면서 세계 경제가 휘청였다. 이번 전쟁은 다수의 아랍권 국가들과 벌이는 전쟁이 아니라는 점에서 50년 전과 차이가 있지만,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배후에서 지원해온 이란 간 대리전 양상으로 번질 경우 유가 시장에 미칠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
한국 정부가 유가 급등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도 많지 않다. 그간 정부는 고유가에 따른 경제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공부문이 앞장서 비용 인상 요인을 흡수해왔다. 하 교수는 “유류세 인하 조치 등을 통해 고유가 충격이 한국 경제 전반으로 퍼지는 걸 막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또 “무역수지가 안 좋아지면 금융 시장에도 불안 요인이 되는데 현재 세수 결손이 심각해 이걸 재정으로 틀어막기에도 무리가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경제 운용에 상당히 제한 요인이 생기게 된다.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지금은 국경지대에서 양측이 싸우는 정도라 유가가 출렁이는 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며 “향후 향방은 이란의 어떻게 엮이는지에 따라 달렸다”라고 설명했다.
관계기관들은 이번 사태로 국제 유가 변동 폭이 확대됐지만, 사태 초기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제금융시장의 움직임은 제한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다만, 향후 사태 전개 등과 관련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기재부는 높은 경계심을 갖고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는 한편, 필요할 경우 상황별 대응계획(Contingency plan)에 따라 관계기관 공조 하에 신속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이날 한국석유공사·한국가스공사와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강경성 산업부 제2차관은 “분쟁지역이 국내 주요 원유‧가스 도입경로인 호르무즈 해협과 거리가 있어 국내 원유·액화천연가스(LNG) 도입에 차질이 없는 상황이며, 현재 중동 인근에서 항해 또는 선적 중인 유조선 및 LNG 운반선이 모두 정상 운항 중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 차관은 “이후 유가의 상승세 지속 여부는 이스라엘 주변 산유국의 대응 등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중동은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67%와 가스의 37%를 공급하는 지역이며, 중동의 정세가 우리의 에너지 안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큰 만큼, 향후 이스라엘-하마스 사태가 국내 수급 차질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와 유관기관, 업계가 합동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