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고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에 들어가자 같은 해 5월 말~6월 사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과 배 회장은 순차적으로 해외로 도주했다. 김 전 회장은 지난 1월 태국에서 골프를 치던 중 태국 경찰에 검거돼 한국으로 송환됐고, 먼저 수갑을 찬 채 법정에 섰다.
배 회장의 황제 도피도 김 전 회장과 닮은꼴이었다. 최근 베트남에서 도피 생활을 하던 도중 두 번째 아내인 유명 힙합 그룹 출신 A씨와 딸을 불러 리조트에서 휴양을 즐기며 요트를 탔다. 또 배 회장은 지난 4월쯤에는 골프를 치다 홀인원을 하자 축하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한국에 있던 수행원 9명이 검찰의 소환 조사를 받자, 조사 내용을 전달받은 것으로도 조사됐다. 수시로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고 한국 음식과 의약품을 공수해 먹었다는 사실도 최근 알려졌다.
“배상윤·김성태는 경제공동체”
배 회장은 1990년대까지 채권자의 사주를 받고 채무자를 납치·강도 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며 생활하다 성인 오락실과 사우나 등을 운영하는 사업가 겸 사채업자로 변신했고, 속옷 제조업체 쌍방울 인수를 시도하다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려 온 김 전 회장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때도 배 회장은 김 전 회장에게서 인수 자금을 빌렸지만, 나중에 계획을 바꿔 김 전 회장이 2010년 쌍방울을 인수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함께 주가조작을 저질러 나란히 유죄를 확정받았다. 이후 김 전 회장은 50개가량 회사를 거느리는 쌍방울 그룹 회장이 됐고, 배 회장은 80개가량 기업의 KH 그룹을 세웠다. KH와 쌍방울은 서로 전환사채(CB)를 인수해주고 지난해 4월 쌍용차 인수전에 함께 뛰어드는 등 금전적으로 사실상 한 몸이 됐다.
KH는 이재명 지사 시절 경기도의 대북 사업과 관련한 의혹에도 쌍방울과 함께 등장한다. 김 전 회장이 돈을 대고 경기도와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 안부수)가 공동 개최한 제2회 ‘아시아·태평양의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는 김 전 회장뿐만 아니라 KH 그룹 전·현직 임원 상당수가 참석했다고 한다. 2019년 7월 25~2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행사였다. 배 회장은 이보다 두 달여 앞서 김 전 회장이 중국 단둥에서 북한 측 인사들을 만날 때도 동행하는 등 김 전 회장이 대북 사업에서 활로는 찾는 과정에서도 한 몸처럼 움직였다.
황제 도피에 임직원 동원…“회사는 망해 가”
이 밖에 검찰은 배 회장이 그랜드하얏트서울을 지배하던 시절 자신이 호텔을 방문할 때마다 임직원들이 단체로 도열한 채 허리를 90도로 꺾으며 인사하도록 강요했다는 의혹, 고향인 전남 영광군에 선산(先山)을 조성하고 임직원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다는 의혹 등도 들여다보고 있다.
배 회장이 황제 도피를 하는 동안 회사는 기울고 있다. KH 필룩스 등 그룹 내 상장사 5곳은 거래정지 중이다. 이런 위기를 틈타 한 채권자는 KH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려고 시도 중이라는 후문이다. 한 검찰 간부는 “시간이 지날수록 선량한 KH 그룹 임직원과 주주 등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서초동 변호사는 “배 회장이 도박에 빠지느라 국내에 개인적으로 진 빚이 1000억원이 가량에 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도피가 길어지는 게 이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