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인당 연간 약 9.57L의 술을 소비하는데, 이는 전세계 약 20위권(세계보건기구 2021년 통계)이다. 술 소비량은 문화나 기후 등의 영향을 받으므로 일괄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일본이 인당 약 7.26L, 중국이 약 6.7L를 마시는 것에 비하면 이웃 나라들에 비해서 우리 국민이 술을 조금 더 마신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술 소비량은 많지만 전세계에 내세울 만한 글로벌 술 브랜드가 없다.
와인 직구, 수입 위스키는 오픈런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는 술에 대해서 나라마다 규제의 방법은 다르다. 우리는 주로 술에 대한 주세를 높이는 방향으로 규제해 왔다. 한국의 주세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업체들은 값싼 술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저렴한 소주ㆍ맥주 중심으로 술 산업이 커져 온 것이며, 고급화가 부족했다. 게다가 한국의 소주는 달고, 맥주는 밍밍하기로 유명한데 정작 제조사들은 우리나라 음식이 맵고 짜서 그렇다고 변명한다. 그러다 보니 고급술이 더욱 발달하지 못했다.
정부는 그 원인을 다양성이 부족한 것으로 해석했고, 다양성을 늘리면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 물꼬를 튼 것이 수제맥주였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북한보다 못 만드는 유일한 제품이 바로 맥주라는 유명한 영국 매체의 기사도 한몫했다. 정부가 여러 규제를 풀어주면서 2015년경부터는 다양한 수제맥주가 등장했다. 그 결과 맥주 산업은 다양성의 구색은 맞추었다. 하지만 여전히 수제맥주는 맥주 전체 산업에서 3%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판매 채널이 마트와 편의점이다 보니 전국에 150여 개가 넘는 수제맥주 기업이 있음에도 정작 마트ㆍ편의점에서 볼 수 있는 기업은 캔입 설비에 투자할 수 있었던 10여 개에 그친다.
전통주는 온라인서 구매 가능
반전이 일어났다. 장기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는 동안 MZ 세대가 홈술과 혼술의 영향으로 자신의 취향을 맞춰줄 수 있는 와인과 위스키로 소비의 중심축을 바꿔버린 것이다. 아재 술로 인식되던 위스키에 젊은 층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위스키는 전세계적으로 공급량이 부족한 탓에 마트와 편의점에서 물량을 풀기만 하면 오픈런이 일어났고, 위스키를 탄산수나 토닉에 타서 마시는 하이볼도 덩달아 인기를 얻었다. 일본의 돈키호테같은 잡화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산토리사의 가쿠빈 위스키는 하이볼 제조용 위스키로 유명한데, 일본에서 1000엔(약 9800원) 초반이면 살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두배 이상의 가격인 3만원을 줘도 구하기가 어렵다.
물론 국내에도 술을 만드는데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수제맥주, 전통주 분야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위스키ㆍ진 분야에서 스타트업 정신으로 창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판로다. 이들이 생산한 양질의 술은 판매처가 너무나 제한적이다.
역차별에 우는 국내 술 제조 업체들
물론 술 산업은 규제되어야 하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 규제가 지나쳐서 국내 산업이 고사하고 수입에 의존하게 된다면 더 큰 안 좋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술을 규제의 영역으로만 두고 국내 업체들에만 더욱 엄격한 규제의 날을 들이대다 보니 해외 와인 사이트에서 와인을 직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등 역차별도 발생한다. 한국의 술 산업을 육성하지 않으면 그나마 내수에 기대고 있던 술마저도 이제는 모두 수입에 의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부도 최근 세계적인 ‘K술’의 탄생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제는 술을 강력한 세금과 유통제한으로 규제하던 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 잔을 마시더라도 좋은 것을 마실 것으로 유도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김태경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