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벨기에 오스텐데에서 열린 UCI(국제사이클연맹·Union Cycliste Internationale) 패러 사이클링 월드컵. 출발선에 선 박찬종(33)씨는 왼쪽 다리에 의족을 찬 채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자전거 유튜버로 유명했던 그는 지난해 9월, 5t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 뒤 왼쪽 다리를 무릎 위까지 절단해야 했다. 그로부터 약 7개월 뒤, 그는 장애인 사이클링 선수로서의 인생 2막을 위해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이야기는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다. 대회를 마치고 온 그를 지난 12일 만났다.
UCI 월드컵은 매년 이탈리아·벨기에·미국에서 총 세 차례 진행되는 장애인 사이클 대회다. 박씨는 독주, 개인도로 두 종목에 참가했다. 경기 결과는 참가자 34명 중 독주 27등, 개인도로 26등이었다.
- 결과에 만족하나.
- 사실 첫 국제대회 출전이 이번 월드컵이어서 꼴등을 면하는 게 목표였다. 선방했다고 생각한다. (웃음)
- 의족을 착용하고 자전거를 타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 몸 양쪽 균형차가 커서 처음엔 많이 휘청거렸다. 의족을 찬 왼쪽 허벅지가 오른쪽보다 8cm 정도 더 길다. 좌회전하려고 핸들을 돌리면 핸들 바가 무릎 쪽에 닿아 넘어질 뻔한 적도 많다. 허벅지 근육 대부분이 무릎 아래쪽과 연결돼있는데, 난 무릎 위까지 절단해서 쓸 수가 없다. 대신 둔근(엉덩이 안쪽의 근육)을 사용하는 데 적응하는 시간이 꽤 걸렸다.
- 연습은 얼마나 했나.
지난해 9월 23일, 화학 제조회사 연구직으로 일하던 박씨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2차선에 있던 5t 트럭 운전자가 3차선 우측에 있던 그를 발견하지 못하고 도로 우측 건물에 진입하려다가 들이받았다. 의식을 잃어갈 때쯤 응급 헬기로 아주대 외상센터로 이송됐다. 그는 "엄청난 통증에 숨까지 안 쉬어져 죽는 건가 싶었다"며 "트럭 기사가 차 밑으로 기어와 절규하며 손을 잡아주는데, 생의 마지막이란 생각에 용서하는 마음마저 들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절단 수술 뒤 치료를 받으며 그는 블로그에 병상일기를 썼다. 다시 자전거를 타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올린 사진이 자전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 많은 응원을 받았다.
- 왜 자전거를 다시 타기로 했나.
- 한동안 자전거를 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가족에게 용품도 다 버리라고 했다. 그런데 사고 소식을 들은 친구가 "다리를 잃었지만 온전히 남아있는 나머지 몸으로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해줬다. 유튜버로 활동하며 자전거 동호인 문화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한순간에 사라지면 사고 뒤 절망에 빠져버린 안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았다.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건 지난해 12월, 장애인 사이클링 국가대표 감독의 연락을 받으면서다. 감독은 사고가 난 지 얼마 안 된 그에게 출전을 제안할지를 놓고 많이 고민했지만, 강한 의지가 보여 연락했다고 한다.
-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 자전거를 다시 탄다고 하니 의족·자전거·의류 업체에서 지원을 해주셨다. 문득 책임감이 들었다. 내가 지원받은 의족 비용은 다른 장애인들이 의족을 사서 낸 돈에서 나온 거니까.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서 고작 취미로 자전거를 타면 안 될 것 같았다. 장애인 스포츠의 어려운 현실도 보였다. 이왕이면 내가 많이 노출돼서 장애인 선수의 삶을 알려야겠다고, 나를 보고 다른 장애인들도 '할 수 있겠다'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 보행 장애인이 되고 달라진 점은.
- 장애를 얻고 나서야 우리 사회에 배려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가로수 주변의 턱이나 아파트 내 오토바이 주행을 막기 위해 친 펜스 같은 것들이 휠체어 보행에 방해가 된다. 또 한 가지는, 아무 의미 없는 시선도 장애인에겐 폭력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2024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에 출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진짜 목표는 "사고 전보다 자전거를 잘 타는 것"이다. 그는 "장애를 얻기 전보다 실력이 좋아지면 스스로 장애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