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은 쌀이 남아돌아 문제다. 소비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1992년 112.9kg이던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56.7kg으로 줄었다. 30년 만에 딱 절반이 됐다. 수요가 줄면 가격이 내려가야 정상인데 쌀은 농민의 핵심 수익원이기 때문에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일방 처리했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13일 국회 본회의 재투표에서 부결됐다.
의무 매입은 쌀 생산 감축과 상충
곡물 대책 마련은 국가적 과제
정쟁 떠나 실질적 대안 논의 필요
농민 입장에선 쌀값을 안정시킬 확실한 장치를 원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변화가 필요한 분야에 경직된 제도가 도입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비가 줄었지만, 쌀이 주식인 상황에서 농업에 지원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 식량 안보 차원에서 주식 생산 기반을 유지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느 수준까지 할 것이냐에 대해선 정치권과 정부 모두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국내 1인당 밀 소비량이 30kg을 넘는 등 꾸준히 늘고 있지만, 자급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일본의 경우도 한국과 비슷하지만 밀 재배에 꾸준히 노력해 자급률이 10%를 웃돈다. 상당한 예산을 투입한 결과다. 농식품부는 가루를 내기 쉬운 가루쌀 재배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밀 재배 농가는 지원에서 소외돼 있다며 불만이다.
정부 대응에도 아쉬움이 있다. 민주당이 지난해부터 양곡관리법 처리 움직임을 보였는데 의무 매입 반대라는 원칙만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정부를 믿지 못하는 농민을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했다. 농식품부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이후인 지난 6일 종합 대책을 내놨다. 올해 쌀값이 20만원(80kg 기준) 수준이 되도록 하고 농가 직접지원금은 2027년 5조원으로 확대하는 내용이다. 다만 구체성이 떨어지고 기존 나온 대책을 모은 ‘재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최종 부결됐지만 중장기적인 곡물 대책을 어떻게 마련해 실행하느냐는 국가적인 과제다. 예산을 쓰더라도 효율적이고 장기적인 방향에 맞게 집행돼야 한다. 민주당도 구체적인 대안을 내야 한다.
요즘 대학가에선 ‘1000원의 아침밥’이 퍼지고 있다. 쌀 소비 확대를 위해 농식품부가 끼니 당 1000원을 지원하면, 대학 당국이 재원을 마련해 학생에게 1000원에 아침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2012년 순천향대에서 시행한 것인데 농식품부가 예산을 지원하면서 대학가의 히트 상품이 됐다. 양곡관리법으로 대립하는 여야도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낸다.
쌀 문제 해결도 여기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제한된 예산을 투입하되, 자율적으로 참여하고 관련 주체가 비용을 분담한다. 이를 통해 농민에게 신뢰를 주고 쌀 소비자에게도 유익한 그런 방안을 끈기 있게 찾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