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00쪽 분량의 미국 기밀 문건이 온라인에 유출된 사건을 두고 미 당국이 본격 수사에 착수한 가운데 이번 유출의 배후와 동기를 두고 다양한 추정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미 정부 내 반체제 인사의 소행"이라고 보는 반면, "러시아의 허위 정보 작전"이란 상반된 주장도 나온다. 이도 저도 아닌, 별다른 동기 없는 누군가가 과시성으로 퍼뜨렸을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미 정부의 허술한 기밀 관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주요 추정과 그 근거를 소개한다.
추정1. "제2의 스노든 사건"
CIA와 미 국가안보국(NSA)에서 일했던 스노든은 2013년 NSA가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자국민 수백만 명의 개인 정보를 무차별 수집하고, 우방국의 정상들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했던 인물이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 유출도 개인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지랄디의 견해다.
지랄디는 "미 당국이 그런 종류의 문건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범위를 좁히기 시작했다"며 "아마 조만간 용의자들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선 유출된 문건이 인쇄된 자료의 촬영본인 데다, 종이에 접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점 등을 이유로 조직적 해킹보단 개인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추정2. "러시아 요원의 고전적 관행"
호프만은 "허위 정보를 끼워 넣은 믿을 만한 문건들을 유출하는 이런 작전은 러시아 요원들의 고전적 관행"이라며 "우크라이나의 최대 군사 지원국인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부 안보 전문가와 미 관리들은 문건에서 다루는 광범위한 주제를 고려할 때 문건 유출자가 미국인일 가능성이 있지만, 친러시아 활동가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추정3. "별다른 이유 없는 과시성 유포"
가디언은 유출 문건의 최초 유포 시점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더 오래전인 지난해 10월로 추정되고, 해당 문건이 게임·무기 관련 소그룹 채팅 서버에 먼저 올라왔으며 이후 본격적으로 퍼지기까지 시간이 걸린 점 등을 추정의 근거로 들었다. 또 미 국가정보국(DNI)에 따르면 2019년 미 정부의 일급 비밀 자료를 읽을 수 있는 접근 권한을 가진 사람은 125만 명에 달했다고 전했다.
매체는 문건의 내용과 유출 경로로 볼 때 러시아가 해킹으로 기밀을 빼냈다거나 미국이 러시아의 사기를 꺾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건을 흘렸다는 등의 가설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미국이 배후라기엔 우크라이나·러시아의 전쟁 상황이나 한국·이스라엘 등 동맹국에 대한 도청 정황 등 미국에 불리한 내용이 많고, 러시아의 책략으로 보기엔 유포 경로 등이 부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 정부의 허술한 기밀 관리가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美정부 보고 문서와 형식 유사"..."유출자 실수 가능성"
BBC 등에 따르면 국방부 장관의 공보 담당 보좌관인 크리스 미거는 10일 취재진에 "(유출된) 해당 문건의 형식은 고위급 인사들에게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관련한 최신 정보를 매일 제공할 때 사용되는 형식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 국방부가 유출 문건을 진짜라고 믿고 있느냐"는 질문엔 즉답을 피하면서 "일부 문건은 변조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전직 미 대테러 고위 관리인 자베드 알리는 유출 문건이 먼저 사진 촬영된 후 온라인에 업로드된 것에 주목했다. 그는 "이런 엉성한 절차는 문서 유출자가 사용된 IP 주소 등을 감추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런 방식으로 유출할 경우 유출자가 (흔적을 남기는) 실수를 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그렇다면 조사관들이 출처를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 정부의 유출자 색출 조사와 관련 "조사관들이 유출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범위를 좁혀 나갈 것"이라면서도 "해당 문서에 접근 권한이 있었던 최소 수백 명의 미 관리나 군인들을 면담해야 하는 대규모 조사 과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