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북한이 봉착한 대내·외적 환경 변화가 극단적 도발을 억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어게인 트럼프'까진 마이웨이
이는 무차별적 도발과 연쇄적 핵실험으로 이어졌던 2017년 상황과는 차이가 난다.
그러나 '하노이 노딜'로 핵협상은 실패로 귀결됐고, 이후 북·미 간에는 불신의 골이 깊어진 상황이다. 7차 핵실험과 같은 북한의 중대 도발은 대화는커녕 미국과의 군사적 충돌로까지 번질 수 있는 위험한 카드가 된 셈이다. 실제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북한의 7차 핵실험 예상과 관련해 핵 사용 시 "북한 정권 종말"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은 긴 호흡으로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 가능성이 분명해지는 타이밍을 기다리며 국방력 강화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며 "기본적으로 핵·미사일의 고도화를 통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하려는 전략을 가졌지만, 김정은과 좋은 '케미스트리'를 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인물이 등장하길 원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역시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며 '장기전'을 암시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21년 10월 국방발전전람회 연설에서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계속 강화해 나가는 것이 당의 드팀 없는 최중대 정책이고 목표이며 드팀없는 의지"라고도 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식량 문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국경봉쇄가 이어지면서 1990년대 '고넌의 행군' 이후 최대의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먹는 문제는 김정은 정권에 떨어진 '발등의 불'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봄 가뭄과 낮은 일사량에 모내기 철인 5월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식량 작물 생산량이 전년보다 3.8%(18만t) 감소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중·러의 지원으로 식량난에 따른 민심 이반 가능성을 관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본격적인 춘궁기인 3~4월이 김정은 정권의 중대 고비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정유석 IBK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연구위원은 "북한은 코로나 유입을 막기 위한 국경 봉쇄가 3년째 이어지면서 내부자원이 고갈된 상황"이라며 "자체역량으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제 곡물·비료의 가격이 오른 것도 당국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은 이어 "김정은 집권 초기에 이룬 경제성장으로 재정적 여력을 축적하고 있었던 2017년과 달리, 최근 경제난은 막대한 군비 확충에 대한 민심의 절대적 지원을 강요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북한 당국이 식량 문제를 체제 안정이나 김정은의 리더십의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달 극히 이례적으로 농촌 문제를 단일 안건으로 상정한 노동당 전원회의 확대회의(8기 7차)를 개최했다. 이는 먹고 사는 문제가 정권 차원에서도 절실하다는 방증이다. 이와 관련 대북 소식통은 "북한이 당장 먹는 문제 해결을 시급한 과제로 상정해 놓은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크다"며 "식량난으로 군량미까지 방출했다는 소식이 나오는 상황에서 민심 동요에 대한 우려도 최근 북한의 행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이 믿을 건 '군대' 뿐
북한은 식량 문제 해결에도 군을 전면에 내세우는 분위기다. 지난달 26일부터 1일까지 진행한 전원회의 결론에서 제시한 농촌문제 해결의 대안은 관개공사 추진, 농기계 보급, 간석지 개간 등인데, 경제 시스템이 붕괴된 북한에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주체는 현실적으로 군이 유일하다. 실제 김정은이 지난해 9월 황해남도 지역으로 보냈다는 농기계 5500여대 역시 군수공장에서 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최근 "80만 명의 청년들이 군입대·재입대를 결의했다"는 보도를 내놨는데, 이에 대해 사실상 '무임금'으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군 병력을 대폭 늘리겠다는 의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이와 관련 미국 중앙정보국(CIA)는 북한이 군 복무 기간을 남녀 모두 3년 연장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CIA는 최근 '월드 팩트북'에서 북한의 남녀는 모두 17세쯤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하며, 최대 군 복무기간이 남성은 10년, 여성은 8년이라고 밝혔다. 기존 북한 군인들의 복무기간은 남성이 7~8년, 여성은 5년이었는데, 북한이 올해 들어 군 복무 규정을 개정해 3년 간 농사를 지어야 군 복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하면서 군 복무가 길어졌다는 게 대북 소식통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최근 김정은의 유일한 지원군인 군인들의 1인당 곡물 배급량을 기존 620g에서 580g으로 줄였다. 군인들에 대한 배급량을 줄인 시점과 맞물려 북한은 그간 주민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각종 미사일 도발 사실 등을 관영 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김정은이 직접 군 관련 시설을 방문하는 등 군 내부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선전선동을 이어가고 있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에 맞서 언제라도 기습적인 국지도발에 나설 수 있기 때문에 방심해선 안 된다"며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경우 가용한 자산을 모두 투입해 즉각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임을 경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