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우리는 은행 시스템에 대한 국민 신뢰를 강화함으로써 미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한다”며 이 같은 내용의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기관은 “SVB 대책과 관련해 납세자들이 부담하는 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조치는 SVB 사태가 금융시스템 전체 위기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한 비상 대책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번 결정에 따라 SVB 예금주는 13일부터 예금 전액에 접근할 수 있다. 금융기관 자금 대출의 구체적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Fed 측은 “수조 달러의 잠재적 수요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큰 규모”라고 했다.
재무부는 SVB 사태 여파로 12일 폐쇄된 시그니처은행에 대해서도 모든 예금주를 대상으로 비슷한 대책을 마련했다. 뉴욕주 규제당국금융서비스부(DFS)는 이날 예치금 885억9000만 달러(약 117조 원) 규모의 시그니처은행을 인수하고 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했다.
미 정부의 이번 조치는 ‘특정 은행 파산 시 광범위한 금융권 시스템 리스크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보험 한도 초과 예금도 보호할 수 있다’는 연방예금보험법에 따른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정부 결정에 대해 “아시아에서의 금융시장 개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발표된 연방 당국의 일련의 대책은 많은 금융 전문가들이 처음에는 경제의 한 부분에 국한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던 SVB 붕괴 후 불과 며칠 만에 은행권에 퍼진 공포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Fed는 은행들이 손실 없이 자산을 현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Fed의 대출 기구인 할인창구(discount window) 이용 조건을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이는 SVB가 고객사들의 밀려드는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대부분 미 국채로 구성된 자산을 울며 겨자 먹기로 큰 손해를 보고 매각하는 바람에 초고속 붕괴한 것과 비슷한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미 재무부는 이번 결정이 구제금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일각에선 반발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WP는 “예금자에게 돌아가는 자금은 미국 은행에 의해 지불되지만, 이는 결국 재무부에서 지급되는 것이고, 따라서 미국 납세자에 전가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미 금융가에선 ‘SVB 통째 매각’이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보지만 쉽지 않은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은 “SVB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PNC파이낸셜과 캐나다로열은행(RBC)이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다만 영국 청산은행 중 하나인 런던은행 컨소시엄은 SVB의 영국지사인 SVB UK 인수를 공식 제안했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런던은행이 사모펀드 등 투자자들로 구성한 컨소시엄은 이날 공식 인수 제안서를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SVB 이사회 등에 제출했다. 런던은행 컨소시엄 외에도 바클레이스와 로이드, 아부다비 왕가의 투자회사 로열그룹, 소프트뱅크 지원을 받는 오크노스, HSBC 홀딩스 등도 SVB UK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