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을 몇 번 이상 보면 ‘안다’라고 말해야할까요? 한 번만 봤어도 ‘안다’고 하는 사람이 있고, 몇 번 봤어도 피상적 만남이었다면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남시장 시절 김문기를 몰랐다”는 발언으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법정에 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4부(부장 강규태)는 3일 오전 10시 40분 이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당초 10시로 예정됐던 재판이지만, 이 대표가 금요일마다 있는 최고위원회의 일정을 이유로 기일변경을 신청해 40분 미뤄 시작됐다.
“당선 목적으로, ‘김문기 몰랐다’는 거짓말” 기소
이 대표는 지난해 20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 발언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대표가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2021년 12월 여러 방송사 인터뷰에서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에 대해 “성남시장 재직 당시에는 김문기는 하위 직원에 불과해 몰랐다”“함께 호주 출장을 가서 골프 친 사실이 없다” 등 발언을 한 것이 선거법 250조 1항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 대표가 처음 해당 발언을 한 건 12월 22일로, 김 전 처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바로 다음날이었다.
검찰은 “대장동 비리에 피고인이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실무책임자였던 김문기씨가 사망하자 부정적 여론이 확산했다”며 “비난 확산을 막고 대장동 개발사업과 연관성을 차단해, 20대 대통령 선거에 당선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고 주장했다.
‘몰랐다’=‘김문기와 만난 적 없다’? 李측 “검사가 왜곡” 주장
이날 오전 재판은 ‘안다’는 서술어의 개념 해석을 둘러싼 언어학 토론처럼 흘러갔다. 이 대표 측 변호인은 ‘안다’의 사전적 뜻을 나열한 뒤 “안다, 모른다는 경험 등 요인에 의해 형성된 의식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안다‧모른다의 객관적 기준을 설정할 수 없고, ‘개인적으로’ 알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더 주관적 평가”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 측은 “공소사실을 보면 피고인이 ‘몰랐다’고 한 발언을, 마치 ‘김문기씨와 지속적으로 만나고 수차례 보좌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한 것과 같다고 한 듯하다”며 “검사가 언어의 통상적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 발언의 의미를 왜곡해 (허위사실 공표죄를) 적용하는 것 아닌가 의문”이라며 공소사실 전체를 부인했다.
2020년 이 대표를 공직 퇴출 위기에서 살려낸 대법원 판결도 변론 중 등장했다. 변호인은 “방송에서 즉흥적으로 이야기할 때 표현의 명확성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논의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기억을 되짚은 게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성남시 산하 팀장급만 600명이라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기억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 등 뒤가 오페라하우스야, 아빠랑 나중에 꼭 오자”
“아빠 얼굴 너무 많이 탔어, 시장님, 본부장님하고 골프까지 쳤다 너무 재밌었어~ 며칠만 참으면 가니까 힘내고 ㅇㅇ(딸 이름) 사랑하고, 당신(아내)도 너무 보고싶고 사랑해 내일도 전화할게~”
“ㅇㅇ야 저 등뒤에 보이는 하얀건물이 오페라하우스야. 아빠랑 나중에 꼭 오자. 저녁에 또 보낼게. 정말정말 사랑해 알라뷰”
검찰은 김 전 처장과 이 대표가 함께 찍힌 다른 짧은 영상과 사진도 여럿 제시하며 “김 전 처장은 이 대표를 지근거리에서 밀착수행했고, 다른 동반자와 구별되는 관계였다”고 주장했다.
李 “尹 ‘김만배 모른다’는 조사도 안해…부당”
한편 이날 역시 서울중앙지법에서 대장동 개발 관련 사건 공판에 출석했던 유동규는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 측의 주장에 대해 “자꾸 언어를 헷갈리게 하는(쓰는) 건 굉장히 나쁜 습관”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