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방문의 해] “산에서 보니 다양한 무늬 천지…마치 나스카 불가사의 보는 듯”

중앙일보

입력 2023.01.0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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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습지’ 상공에서 바라본 어싱(earthing)길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해 말 전남 순천시 순천만습지를 찾은 정명석(52)씨는 예상치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전망대에 올라보니 자신이 걸어온 순천만 데크길이 커다란 오리가 걷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주변 갈대밭을 목재 데크로 연결한 순천만습지 일대는 한반도 형상과도 닮아 있었다. 순천만 끝자락을 바라보니 축구장 3~4배 크기의 ‘대한민국의 미래, 순천만정원’이라는 안내문구도 눈에 들어왔다.
 
 정씨는 “아래서 데크를 걸을 때는 몰랐는데 산에서 내려다보니 순천만 전체가 다양한 무늬 천지였다”며 “마치 나스카(Nazca) 불가사의를 보는 듯했다”고 말했다. 나스카 지상화는 페루 사막에 100∼300m 크기의 동물 그림이 곳곳에 그려진 곳이다. 그림 크기가 워낙 큰 탓에 공중에서만 확인이 가능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다.
 

4월 1일부터 국제정원박람회 오픈

 
오는 4월 1일부터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는 순천만에 자연을 이용한 조형 작품이 곳곳에 수놓아지고 있다. 일반 벼와 검은색 벼의 색깔 차이로 표현한 흑두루미 형상과 순천만정원 문구가 대표적이다. 농작물로 만든 경관디자인은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의 자연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순천만은 22.4㎢의 갯벌과 5.6㎢의 갈대 군락지에 3000마리가 넘는 흑두루미의 군무가 펼쳐지는 곳이다. 조류 252종과 동식물 1600여종이 서식해 생태계의 보고(寶庫)로도 불린다.


순천만습지를 찾은 탐방객들. 프리랜서 장정필

두 번째 생태 프로젝트 ‘어싱길’

 
2013년 4월 국내 첫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던 순천만이 준비한 두 번째 생태 프로젝트는 어싱(earthing)길이다. 순천만 연안과 내륙의 람사르습지를 연결하는 탐방로다. 어싱은 맨발 걷기로 땅과의 접지를 꾀하는 자연치유법이다. 땅과 신체의 접촉을 통해 체내에 쌓인 정전기를 배출하고, 음이온성 자유전자를 흡수해 신진대사를 촉진하는 원리다.
 
 4월 정원박람회 개막에 맞춰 공개될 순천만 어싱길은 총 3코스(4.5㎞)다. 1코스는 2008년 전국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한 것을 기념해 만든 ‘벚꽃이 아름다운 람사르길’이다. 2코스는 대대포구에서 생태체험장으로 이어지는 세계유산길, 3코스는 별량 장산마을까지 이어지는 갯골길이다. 갯벌과 농경지의 경계인 뚝방길 위에 잔디나 고운 마사토 등이 번갈아 있는 갯벌 로드를 조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해양 어싱길”

 
어싱길은 단순한 치유의 공간을 넘어 항구적인 생태보존을 위한 의도도 숨어있다. 현 정부의 120대 국정과제인 ‘국가해양정원’ 사업의 중심지 역할이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어싱길은 제1호 해양정원 지정에 도전하기 위한 킬러 콘텐트”라며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해양 어싱길과 순천만의 옛 뱃길 복원 등을 통해 10년 전 박람회와는 또 다른 감흥과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5대 연안습지인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 의 군무. [사진 순천시]

 

국내 최대의 흑두루미 서식지

 
순천만에서 국내 첫 정원박람회와 국가정원이 탄생한 배경은 2009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노관규 순천시장이 순천만 보존과 흑두루미 보호를 위해 주변 농경지에 있던 전봇대 283개를 뽑아낸 게 시작이다. 30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순천만에 생태형 탐방로를 설치하고 주차장을 생태공원으로 바꾼 것도 이때다.
 
 이후 순천만은 한 해 35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찾아드는 국내 최대 서식지가 됐다. 1999년 80마리의 월동이 확인된 후 매년 흑두루미 개체수가 급증하는 추세다. 2014년 1005마리로 1000마리를 돌파한 데 이어 2021년에는 3470마리가 순천만을 찾았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에 있는 흑두루미 1만8000마리 중 40% 이상이 해마다 순천만을 찾는 것으로 본다. 천연기념물 228호인 흑두루미는 행운과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길조다.

정원박람회장으로 조성된 ‘순천만국가정원’ 프리랜서 장정필

 

최대 규모의 인공정원 ‘순천만정원’

 
10년 전 박람회장이 들어선 순천만정원은 국내 최대 규모의 인공정원이다. 5㎞ 거리인 순천만습지를 보존하기 위해 111만2000㎡ 정원 안에 83만7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축구장 100개 크기인 순천만정원은 박람회 개최 후인 2015년 9월 국내 첫 국가정원이 됐다.
 
 순천만국가정원은 내년 박람회 때 또 한 번 변신을 시도한다. 국가정원 앞 농경지에 100㏊ 규모의 경관조경을 조성한다. 튤립 150만본과 유채꽃 등을 이용해 100년 전 순천만의 모습을 형상화한 콘셉트다. 순천시농업기술센터 이기정(56) 소장은 “순천만습지 내 어싱길과 함께 매력적인 박람회를 이끌 수 있도록 박람회장 앞 경관정원을 꾸미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