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대가 정관스님 단독 인터뷰
세계가 인정한 스님의 손맛
“차 마시며 조금만 기다리셔요.”
오전 10시. 정관 스님은 사찰음식 교육관에서 제자들과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하루 한 끼만 먹을 때가 많다는 스님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바삐 손을 놀렸다. 건조기에 버섯을 말리고 배달 온 식재료를 정리했다. “눈 때문에 일주일 만에 택배가 왔거든요. 우리도 며칠 동안 고립돼 있었어요. 이 동네가 원래 그래요.”
정관 스님은 2006년 한국전통사찰음식연구회를 시작했고, 국내외 대형 행사에서 사찰음식을 선보였다. 2015년 ‘뉴욕타임스’에 ‘요리하는 철학자’로 소개됐고, 2017년 넷플릭스 프로그램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하면서 전 세계가 주목했다. 이후 세계 각지에서 천진암을 찾아온다. 뉴욕타임스에 나온 대로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지난해 3월에는 ‘아시아 50 베스트 레스토랑 아카데미’가 정관 스님에게 ‘아이콘 어워드’를 수여했다. 석 달 뒤 조계종은 정관 스님을 사찰음식 명장으로 지정했다.
"레시피는 없습니다"
“한식에서 가장 중요한 간장과 된장을 보면 발효 음식이죠. 김치 같은 저장 음식도 많죠. 장아찌도 있고요. 음식 안에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며 움직여요. 거기에 정신이 들어가죠.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부터, 식재료와 자연 그리고 농부에 대한 고마움이 보태져 있죠. 그러니 먹는 사람의 뼛속까지 울림이 전해지는 거예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정관 스님은 제철 식재료를 중시한다. 직접 텃밭을 가꾸고 사찰에서 가까운 담양이나 정읍의 오일장을 이용한다. 농작물을 직접 기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다. 작물이 많지 않은 겨울엔 어떤 음식을 만드는지 궁금했다. 스님은 뚝딱 일곱 가지 음식을 완성했다. 호박좁쌀죽, 참나물, 미역 무침, 톳나물, 유자청 얹은 샐러드, 연근 삼합, 그리고 스님의 시그니처 메뉴인 표고 조청 조림.
정관 스님이 만드는 음식에는 레시피가 없다. 직관을 따르고 즉흥적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 딸기와 청포도, 연근으로 만든 삼합은 이날 스님이 처음 시도한 음식이었다.
“같은 채소도 계절에 따라 상태가 다른데 하나의 레시피가 있을 수 없죠. 레시피에 의존하면 거기에 걸려서 다음 생각이 안 일어나요. 일체의 집착을 내려놓고 새로 일어나는 에너지로 나를 발견하는 수행의 이치와 같습니다.”
‘풀무원’ ‘오뚜기’ 대표도 배우고 가
“풀무원, 오뚜기를 비롯한 많은 식품기업 대표가 천진암을 찾았습니다. 그때마다 강조했습니다. 이윤 추구는 어쩔 수 없겠지만, 좋은 식재료로 이로운 음식을 만들어 그걸 찾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그나마 요즘은 많이 변화했다고 생각합니다.”
2023년은 경제 전망이 어둡다. 최악의 경기 침체 전망도 나온다. 이 와중에 식재료와 외식 물가는 치솟고 있다. 문자 그대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스님은 ‘지지 않는 정신’과 ‘에너지’를 강조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와 통하는 것도 같았다.
정관 스님은 바쁘다. 주말마다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열세 번이나 외국을 나갔다. 이번 달에는 뉴욕대학생 30명이 천진암을 찾는다. 한데 사람이 부족하다. 스님에게 음식을 배우는 조리학과 졸업생과 요리사 몇몇이 일손을 거드는 정도다. 요리·강연뿐 아니라 행정까지 스님이 직접 챙긴다. 템플스테이를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인력 지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가 예산이 없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정관 스님은 국내외에서 열리는 온갖 정부 행사에 나가고 있다.
백양사 템플스테이 직접 체험해보니
오후 3시 법복으로 갈아입고 송강 스님과 함께 사찰을 둘러봤다. 단풍철마다 사진 찍는 이들로 붐비는 쌍계루 앞 연못은 꽁꽁 얼어있었다. 눈 덮인 연못과 누각, 백학봉이 어우러져 그림을 만들었다. 30년 만의 폭설이 만든 비경이었다. 대웅전과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2066호)를 모신 극락보전을 둘러보고 경내를 산책했다. 눈 덮인 고요한 산사를 거니는 것만으로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오후 5시. 이른 시간에 저녁 공양을 한 뒤 타종 체험을 했다. 어둑한 밤, 종소리가 골짜기에 길게 메아리쳤다. 타종이 그치자 온 세상이 침묵에 잠긴 것 같았다. 대웅전에서 저녁 예불을 마치고 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은은한 조명을 받은 쌍계루가 연못에 비친 모습이 낮보다 더 근사했다. 템플스테이 참가자만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말도 수행과 같습니다. 계속 연습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색해도 계속 좋은 말을 하다보면 내 마음이 그 말을 따라가고, 상대도 진심을 알아줍니다. 누군가 듣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해도 안 됩니다. 한 번 뱉은 말은 우주에 남아서 반드시 나에게 돌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