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감옥은 황홀했다" 어릴 적 이웃마을 숙이는 세계의 전부였다[BOOK]

중앙일보

입력 2022.12.30 14:00

수정 2022.12.30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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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있었다
이재무 지음
열림원
 
 
시가 어떻게 써지는지는 시인들도 잘 모른다. "시가 벼락처럼 쏟아졌다"는 식의 모호한 진술들은 시 쓰는 데 있어서 '자유자재'는 지극히 어렵다는 경험담일 것이다. 어떻게 시인이 됐고, 시를 쓰게 된 기원이 무엇인지는 보다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는 기억이나 성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재무 시인의 최근 시집 『한 사람이 있었다』 는 그렇게 시의 근원을 투명하게 밝힌 책이다. 사랑 때문에 시를 쓰게 됐다는 것이다. 신작 시와 기존 시집에서 일부를 가져와 82편을 묶은 연시(戀詩)집이다. 어릴 적 이웃 마을 숙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시집 제목의 '한 사람'이다. 단 한 사람이었던 숙이로 인해 아프고 행복했고, 그는 자신의 시의 베아트리체였으며 세계의 전부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프고 행복했다'는 모순어법에 주목하자. 신파를 두려워하지 않는 시인은 '장기수'라는 시에서 자신을 "그리움의 장기수"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수감은 자청한 일이다. "너라는 감옥"이 "황홀한 재앙"이기 때문에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는 것이다. 


 스스로 자초한 형벌은 고통과 쾌감을 동일시하는 착란에 그치지 않는다. "삶이 모순"이라는 이치를 "섬광처럼 깨"닫게 된다. ('모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