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칼 에라투스, 케냐 투르카나 주 소펠 마을 사회봉사자)
케냐 북서부의 오지 투르카나 주는 평균 기온이 40도가 넘는 메마른 땅이다. 케냐의 47개 주(州) 중 두 번째로 가난하다. 4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농작물과 가축이 말라 죽고 주민들은 항상 목마르다.
지난 6일(현지시간) 취재진은 케냐 로드워 공항에서 1시간 넘게 비포장도로 45㎞를 달려 투르카나 주 '소펠(Sopel) 마을'에서 진흙과 나무줄기로 집을 짓고 낙타와 염소 등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주민들을 만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장면은 '누더기'에 가까운 옷을 걸친 깡마른 아이들이 흙먼지 속에서 뛰노는 모습이었다. 흙먼지 속에서나마 아이들이 웃으며 놀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계기는 2020년 한국 정부 예산으로 지어진 급수 시설이다. 이곳에 지어진 급수 시설은 전력 공급이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해 태양광으로 가동된다. 녹슬기 쉬운 수동 펌프와 비교하면 최장 30년까지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다.
한국 정부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투르카나 주에 550만 달러(한화 약 72억원)를 투입해 '기후변화대응력 강화를 위한 식수위생 개선사업(SCORE)'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유니세프가 협력 형태로(국별 국제기구 사업) 150만 달러(한화 약 19억원)를 추가 지원하면서 총 사업규모는 700만 달러(약 91억원)에 달한다.
메마른 땅에 설치된 급수 시설은 인근 마을까지 합해 5400여명의 삶을 바꿔놨다.
아이들은 맑은 물이 쏟아지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거나 물통을 가득 채워 집으로 향한다. 13살 어린이 도르카스 로카펫은 취재진에 "수도가 설치되기 전에는 하루에 10㎞ 넘게 걸어서 물을 길어와야 했는데 이제 집 근처에 물이 있으니 수저도 씻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웃음을 보인 로카펫의 체구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수십 킬로그램의 물통을 지고 그늘 하나 없는 메마른 땅을 맨발로 걸어가기엔 너무나 가녀리게 보였다.
잭슨 무티아 유니세프 로드워 지역 사무소 식수위생 전문가는 "과거에는 아이들이 길게는 20㎞ 거리를 걸어서 물을 길으러 다니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오게 됐고, 위생과 영양 상태도 확연히 좋아졌다"고 말했다. 인근 보건지소의 대니얼 이렝 간호사는 "급수 시설이 들어선 후 5세 이하 아동의 설사병 발병률이 20% 이상에서 5% 이하로 확 줄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때 손을 씻는 게 중요했는데 물이 충분하게 들어와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가축들도 흠뻑 목을 축일 수 있게 됐다. 이곳 주민의 85% 이상은 농·목축업에 종사하는데, 식수 문제가 해결되면서 생계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가축의 폐사도 상당 부분 줄었다.
박미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ㆍKOICA) 케냐 사무소 부소장은 "주민들이 말하길 급수 시설이 없을 때는 물이 생기면 귀한 자산인 낙타를 가장 먼저 먹이고, 그 다음에 염소를 먹인 뒤, 마지막으로 사람이 마셨는데, 이젠 가축과 사람이 동시에 물을 마실 수 있어 기쁘다고 한다"고 전했다.
역시 케냐의 주도 로드워에서 1시간여 거리(55㎞)에 있는 '칼로피리아(Kalopiria) 마을'에도 한국 정부 지원으로 올해 태양광 급수 시설이 들어섰다. 인근 6개 마을 1400명이 '생명의 물'을 마시게 될 수 있게 됐다. 가뭄 때문에 마을을 떠났던 주민들도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취재진을 만난 존 로카위 칼로피리아 마을 이장은 "더러운 물로 인한 수인성 질병이 사라졌다"며 "(급수 시설은) 신의 선물같다"고 말했다. 급수 시설 주변에는 식용 작물을 기를 작은 텃밭도 일궜다.
특히 아이들의 삶이 바뀌었다. 이 마을 초등학교 교장 에무론 실비아는 "예전에는 아이들이 매일 4시간씩 무거운 물통을 지고 험한 바윗길을 걷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경우도 많았다"며 "워낙 고된 일이다보니 일부 여자 아이들은 도와주겠다는 남자들 말에 혹해 함께 길을 나섰다가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젠 교실 안에 학생 수십명이 가득 찼다. 교재를 읽고 수다를 떨거나 취재진에게 밝은 표정으로 다가선다. "의사가 꿈"이라는 7학년 학생 이레네 에모이는 "교실이 더 필요할 정도로 학생이 많다"며 "물이 풍족해진 데 감사하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직접 찾은 소펠마을과 칼로피리아 마을을 비롯해 투르카나주 전역에서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지어진 급수 시설의 혜택을 받는 주민은 2022년 12월 기준 약 10만명에 달한다.
반면 맑은 물이 없는 삶은 어떨까.
취재진은 카지아도주 '로통와(Lotong'wa) 마을' 주민들의 목숨을 건 '물 구하기 대장정'을 지난 6일(현지시간) 동행했다.
이곳 주민들은 매일 왕복 40㎞를 걸어 '물 구덩이'(Scoop Hole)를 오가고 있다. 이미 바짝 말라버린 사막 지대에서 한 방울의 물을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손으로 파헤치다 보니 구덩이가 지하 20m까지 깊어졌다. 입구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까마득한 검은 구멍처럼 보였다.
어린아이들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손으로 파 내려간 가파른 경사를 오르내렸다. 미끄러져 부상을 당하는 건 예삿일이다. 10여명의 아이들이 투입돼 구덩이에서 길어온 물은 개구리가 떠 있는 뿌연 흙탕물이다. 도저히 그대로 마실 수는 없어 살균 소독제를 넣어 침전물을 가라앉힌 뒤 위쪽 물만 마신다고 한다.
뿌연 흙탕물을 간신히 구한 어린아이들은 흙먼지를 뚫고 바짝 마른 자신의 몸집보다 더 커 보이는 물통을 굴려 또다시 수십㎞를 걸어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지만, 피할 수 없는 현실은 가혹함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