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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내기용' 소규모 사업만 난립…"부처별 따로 하는 ODA 통합해야" [이젠 K-ODA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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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주 한성대 교수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ODA의 가장 큰 문제로 '분절화'를 꼽았다. 우상조 기자

이태주 한성대 교수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ODA의 가장 큰 문제로 '분절화'를 꼽았다. 우상조 기자

“한국에선 40여개 부처·기관이 각자 주머니를 차고 예산을 받아 개별적으로 ODA 사업을 합니다. 받는 입장에선 규모는 작고 효과도 없는데 생색만 내려 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태주 한성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전세계 ODA 도너(donor·공여자) 중 사업의 분절화·파편화가 가장 심한 국가”라며 이같이 말했다. 모든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사업을 하는 데다, 사업의 개수 역시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 스스로 ODA의 경쟁력을 잃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태주 교수는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창단에 참여했던 설립 멤버다. 코이카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중 무상원조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이다. 연합뉴스

이태주 교수는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 창단에 참여했던 설립 멤버다. 코이카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중 무상원조 사업을 전담하는 기관이다. 연합뉴스

이 교수는 한국 ODA의 ‘산 증인’으로 불린다. 1989년 청와대가 주도해 한국 최초로 만든 해외봉사단에서 지도 교수를 담당했다. 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 창단 멤버로 참여하며 한국 무상원조의 기틀을 잡았다. 2006년부터는 ODA를 감시·평가하는 민간단체인 ‘ODA 와치(현 발전대안 피다)’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내년에 무상원조 분야에서만 약 1800개 ODA 사업을 진행할 예정인데, 이는 한 국가당 평균 70~80개에 달하는 과한 규모”라며 “사업 개수만 늘린 탓에 결국 사업당 투입 예산과 실효성은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ODA 선진화를 위해선 하루빨리 컨트롤 타워를 정해 원조 시스템을 통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하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성적은 A-, 꾸준한 양적 성장"  

한국은 2009년 11월 '선진 공여국 클럽'인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사진은 당시 김중수 주 OECD 대사가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에게 DAC 회원국 초청 수락서한을 전달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은 2009년 11월 '선진 공여국 클럽'인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사진은 당시 김중수 주 OECD 대사가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에게 DAC 회원국 초청 수락서한을 전달하는 모습. 연합뉴스

한국도 ODA를 시작한 지 30년에 접어들었다. 성적을 매기자면.
"여전히 부족하지만, 학점으로 평가하자면 ‘A-’ 정도는 된다. 우선 IMF 사태를 비롯한 국가적 위기와 잇따른 정권 교체 속에서도 일관성 있게 ODA 지출 총량을 늘려왔다. 2009년(※한국은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며 본격적인 선진 공여국이 됐다) 당시 한국의 ODA 수준은 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중 바닥이었는데, 지금은 중상위권으로 올라왔다. 특히 원조의 투명성 지표를 현저하게 개선했다."
ODA가 왜 중요한가.
"이번 정부에선 인권·자유·민주주의 등 가치외교를 강조한다. 이를 토대로 ‘글로벌 중추 국가(GPS·Global Pivot State)’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도 걸었다. 두 가지 목표 모두 ODA와 직결된다. ODA는 외교 전략의 문제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다."

"예산·인력 욕심이 ODA 분절화 야기" 

이태주 한성대 교수는 1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ODA 사업이 없다는 것 자체가 분절화로 인한 폐해"라고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이태주 한성대 교수는 14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억에 남는 ODA 사업이 없다는 것 자체가 분절화로 인한 폐해"라고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이 교수는 ‘기억에 남는 한국의 대표 ODA 사업’을 묻자 팔짱을 낀 채로 30여초간 침묵을 지켰다. 그러더니 “생각나는 사업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뭐가 문제인가.
"수십 수백개의 사업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는데 성공이라고 평가할 만한 사업이 없다. 이런 상황 자체가 ODA 분절화의 폐해 아니겠나. 일본이 미얀마 양곤의 ‘2030 도시 계획’ 자체를 만들고 직접 바꿔나가는 등 임팩트 크고 성과가 남는 굵직한 ODA 사업을 해 나가는 모습과 대비된다."
수원국 입장에서도 한국은 ODA 사업 주체가 많아 혼란스럽겠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ODA 사업 현장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현지 대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원조 사업이 많다'고 하소연하더라. 비슷비슷한 내용의 작은 사업 70여개가 중첩돼서 진행되던 상황이었다. 특히 다른 ODA 선진국이 재외공관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각 부처와 기간이 직접 사업을 딜리버리(시행)하려고 욕심을 낸다."

"시스템 일원화해 '통합 원조청' 신설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 연설을 통해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4조500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있는 기여'를 강조했다. 중앙포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 연설을 통해 공적개발원조(ODA) 예산을 4조5000억원으로 확대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국제사회에 대한 책임있는 기여'를 강조했다. 중앙포토

해결책은.
"각 부처와 기관이 개별적으로 나서는 분절화 시스템을 통합해야 한다. 컨트롤 타워를 만들고 관련 법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이후 ODA 사업을 하는 각 부처의 인력을 파견받아 통합적인 형태의 ‘원조청’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은 ODA 수원국에서 공여국이 된 유일한 국가다. 경험을 살리면 ODA 사업에 강점이 있을 텐데.
"그런 경험을 살린 게 지금까지의 한국식 ODA였다. 건강보험제도, 보편교육, 산아제한 정책까지 경제발전 과정에서 우리가 잘했던 걸 다 묶어 그대로 전수하려고 시도했다. 이런 종합선물세트식 ODA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일례로 유럽 국가들처럼 뛰어난 개도국 인력을 한국으로 초청해 석·박사 과정을 지원하는 스칼라십 프로그램은 한국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수 있는 좋은 ODA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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