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안보’ 된 원전 정책>
30년 넘게 원전 2기가 운영 중인 소도시에서 생산한 전기는 주로 파리 등 수도권에 공급된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별 반대 없이 최근 원전 수명 연장에 동의했다. 인구가 늘고, 지역 경제에 도움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만큼 원전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만난 에스텔 봄버거-리봇 노장쉬르센 시장은 “원전은 완전히 우리 시에 통합돼 자연환경과 별다를 것 없는 일부분이다. 주민 수용도도 90~100% 수준”이라면서 “원전은 지금 같은 경제 위기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원전 확대를 선언한 가장 큰 배경은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다. 전 세계적 기후 변화에 따라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할 대책으로 꼽힌 게 원전이다. 원전은 탄소 배출이 적을뿐더러 수소 생산 등 대체 에너지원 확보에도 도움 준다는 판단이다. 또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그로 인한 지정학적 위기가 프랑스의 에너지 안보 강화 정책의 촉매제가 됐다. 원전을 늘리는 대신 수급이 불안정한 화석연료 비중은 줄인다는 것인데, 한국도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로렌스 피케티 프랑스 원자력청(CEA) 차장은 지난달 15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원전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질 거라고 강조했다. 특히 원전 정책이 에너지 안보와 궤를 같이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CEA는 프랑스 원자력 분야를 운영·관리하는 연구기관으로 원전 정책 의견 등을 제시한다.
프랑스 정부는 원전 추가 건설과 함께 2030년까지 원전 연구개발 등에만 10억 유로(약 1조4000억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프랑스 2030’이란 대규모 정부 투자 계획의 일환이다. 국민적 지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피케티 차장은 “(원전 정책은) 최소 50%의 국민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 원전이 주권과 자립에 도움이 된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최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 등이 알려진 뒤엔 인식이 더 좋아졌다”고 밝혔다.
러시아발(發) 천연가스 제한 등 에너지 위기가 전 유럽을 덮치면서 각국엔 비상이 걸렸다. 조명을 끄고 냉난방을 제한하는 건 기본이다. 화력·재생에너지 중심인 독일은 온수 샤워를 줄이는 캠페인에 나설 정도다.
피케티 차장은 “향후 전기요금은 조금 더 인상되겠지만 전력 공급엔 전혀 문제가 없다. 다만 앞으로 전력 생산이 더 많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돼 원전 유지·보수를 다시 하고 재가동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에너지 주권 확보 노력은 원전에 국한되진 않는다. 프랑스는 궁극적 목표인 탄소 중립을 위해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도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그는 “화석연료 소비를 줄일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상호보완적 관계이기 때문에 둘 다 사용해 전기를 생산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