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진절머리" 이랬던 '월드컵둥이'…가슴에 긍지 피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2.12.06 16:04

수정 2022.12.06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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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경기가 열리는 6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플루·세월호참사·코로나19 등으로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어른이 된 저희들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직장인 윤다인(20·여)씨가 6일 남긴 2022 카타르 월드컵 ‘한 줄 평’이다. 만 스무 살인 윤씨는 2002 한·일 월드컵이 있던 해에 태어난 이른바 ‘월드컵둥이’다. 윤씨는 “어른이 된 2002년생이 본 2022 월드컵은 그야말로 축제였다”며 “16강 진출은 전 국민 염원이 만든 기적으로, 한국 국민이라는 것에 긍지와 자랑을 심어주었다”고 말했다. 
 

2002년 월드컵둥이들의 2022년 월드컵 관전기

가수 이영지가 2002년생이라고 말하자 방송인 유재석 등이 "월드컵 잘 모르죠" 등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 MBC 유튜브 캡처

‘월드컵둥이’ ‘월드컵 베이비’로 불리는 2002년생들은 자라면서 “월드컵도 못 봤겠네”라는 말을 지겹게 들었다고 한다. 전 국민이 열광했던 2002 한·일 월드컵 분위기를 느껴보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농담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다뤄질 정도로 그들의 오랜 꼬리표였다. 20년이 흘러 월드컵 분위기를 만끽하게 된 2002년생의 마음은 어떨까. MZ세대(1981~2010년생)인 이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대학생 김하늘씨)고 입을 모았다.  
 

2002년생 휴학생 현모씨는 6일 브라질전 거리응원에도 나섰다. 사진 현씨 제공

16강 브라질전 1-4 완패도 이들의 마음을 꺾진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 널리 쓰인 표현인 “‘꺾이지 않는 마음’을 제대로 배웠다”는 것이다. 프로축구 입단을 준비하는 대학생 장모씨는 “밤샘 훈련 후 16강전을 봤다. 같은 선수 입장에서 훈련 등으로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움직임만 봐도 알기 때문에 감동했다”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았다. 대학생 A씨는 “패배가 아쉽지만, 지금까지 잘 올라와 아쉬움은 없다”면서 “기억에 남는 첫 번째 월드컵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브라질전 때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아 ‘붉은 악마’가 됐던 휴학생 현모(여)씨는 “설렘 반 기대 반으로 ‘우리도 월드컵 한번 느껴보자’며 친구 7명과 광화문에 갔는데, 날이 정말 추웠지만 하나도 안 춥게 느껴졌다”며 웃었다. 생애 첫 거리응원은 그에게 특별한 교훈을 남겼다. 그는 “한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후반전마다 골을 넣었잖아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꿈은 이루어진다…이젠 알 것 같아요” 

포르투갈전 뒤 트위터에 올라온 글. "왜 2002년생들한테 20년 동안 월드컵 얘기했는지 알 것 같다"는 내용이다. 그만큼 월드컵 승리로 인한 기쁨과 재미가 크다는 뜻으로 읽힌다. 사진 트위터 캡처

12년 만의 월드컵 16강행을 통해 이제는 “평생 놀림 받은 이유도 알 것 같다”는 2002년생도 적지 않았다. 그만큼 월드컵이 주는 기쁨 등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대학생 박모씨는 “2002년 월드컵을 직접 보진 않아 당시에 봤던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이번에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휴가 일정이 16강전과 겹쳤다는 군인 김모씨는 “02년생을 놀리는 게 진절머리가 났고, 다 큰 어른들이 그런 거로 놀리니 화가 났다”면서도 “이번 월드컵을 겪으면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포르투갈전이 끝난 뒤 트위터에 “왜 2002년생들에게 20년 동안 월드컵 얘기했는지 알 것 같음”이라고 올라온 글은 6일 기준 3만 3000여회 넘게 리트윗됐다. 이를 본 2002년생들은 “20년 동안 들으면서 솔직히 왜 저렇게까지 하나 싶었는데 이제 이해한다” “내가 왜 이런 얘기를 들어왔는지 알 거 같다”고 공감했다. 대학생 B씨는 “2022년에 느낀 이 감정이 2002년에도 똑같을 것 같다”고 반응했다. 

2002년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붉은악마 회원들이 한국-독일전에 사용할 '꿈은 이루어진다 '라는 카드섹션을 준비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2년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는 20년을 지나 이들에게도 닿았다. 대학교 기숙사 시청각실에 여럿 모여 16강전을 봤다는 학생 유원진씨는 “목표를 위해 셀 수 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나 성취를 위한 갈망 같은 걸 배웠다”고 말했다. 직장인 우모(여)씨는 “비록 졌지만, 최선을 다해 싸운 선수들을 보며 감동받았다”며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는 메시지가 비로소 와 닿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