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찰·소방·구청 관계자들은 “수사 중인 사안”이라거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입을 닫고 있다. 그러나 위험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은 숨기지 않았다. 어렵게 입을 연 의용소방대 관계자는 “인파·혼잡 상황과는 관계가 없는 소방함 순찰 업무를 맡았다”며 “사고는 업무시간(오후 10시)이 끝난 뒤에 일어났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당직 근무자였던 용산구청 공무원은 “안전 관련 지침을 받았던 게 없었다”며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태원파출소 근무 직원은 “폭주하는 신고에 대응하기에도 여력이 없었다”고 토로했고, 한 경찰 관계자는 “어느 누가 참사가 일어날지 예상이나 했겠는가”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기준의 부재를 그 원인으로 꼽았다. 조성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어떤 정도의 인파가 위험한지에 대한 공유된 기준이 없다 보니 인파 관리를 위한 훈련도 대책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 마약 단속 등 다른 임무를 부여받은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인파 관리에 나서기를 기대하긴 어려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은 지난 2005년 인파 운집 시에도 ‘1인당 최소 0.37∼0.46㎡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했고, 영국 안전보건청(HSE)은 ‘인파의 교차’ 등 위험 요인들을 구체화했다. 중국도 2015년 4월부터 국가관광국이 모든 행사 현장에 최대 수용 인원을 정한 뒤 특정 시간대 군중이 몰리는 일을 방지하고 있다.
계획된 무방비…예고된 불협화음
무방비는 계획됐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맞는 첫 핼러윈인 만큼 인파 운집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나 참사 사흘 전인 10월26일 오후 3시 머리를 맞댄 경찰과 용산구청, 이태원역, 이태원관광특구 상인연합회 4자 간담회에서 ‘인파 운집 위험’은 관심 밖이었다. 익명을 원한 참석자는 “연합회 측은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등을 강조하면서 기동대 배치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경찰에선 불법 촬영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여성청소년과의 목소리가 컸다”고 말했다. 그는 “구청의 최대 관심사는 쓰레기 처리 문제였다”고 덧붙였다.
상황 발생 이후에도 드라마에 나오는 소방과 경찰의 아름다운 호흡은 없었다. 위험을 먼저 느낀 시민들이 가장 먼저 찾은 건 경찰이었다. “압사당할 것 같아요”라는 112 신고는 오후 6시 34분 처음 접수됐고, 4시간 동안 압사 위험을 알리는 11건의 112 신고가 이어졌다. 소방의 119 신고 전화가 걸려온 건 이미 상황 발생 단계로 접어든 10시15분이었다. 경찰은 8시 33분과 오후 9시에 소방에 공동 대응을 요청했지만 소방은 ‘구급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종결 처리했다. 소방당국은 참사 발생 3분 후에야 경찰에 현장 지원을 요청했다. 익명을 원한 경찰 관계자는 “긴급 신고 번호 통폐합 논의가 진행되던 2016년 끝까지 통합을 거부한 게 112와 119”라며 “막상 사고가 발생한 뒤엔 책임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과 긴장이 계속돼 왔는데 이태원 참사 때도 그런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범죄·재난 등 신고 통로를 911로 일원화했다. 워싱턴DC는 지난 2004년 통합통신사무국(Office of Unified Communications)을 설치해 신고 접수 및 출동 요청 처리와 관계기관 간 소통 자체의 전문성을 강화했다.
공하성 교수는 “이태원 참사 당시 인파 관리를 통한 위험 예방이 자신의 업무라고 생각한 기관이 없었던 것 같다”며 “권한과 책임을 확실히 배분하거나 집중시키는 제도 개선과 함께 관계 기관 협력 구현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과 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성일 교수는 “경찰·소방·구청 관계자 개개인이 파트별로 맡은 바 업무에만 충실했다가 ‘장벽’이 쌓여 위험 상황에 대한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며 “위험의 개연성을 왜 놓쳤는지 그 원인을 바닥부터 다시 살펴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