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전 최종승자는 '치킨집'…밤 8시에 주문번호 100번 찍혔다

중앙일보

입력 2022.11.29 17:34

수정 2022.11.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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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에 있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들만 그라운드에서 전쟁을 치른 건 아니었다. 가나와의 조별예선 2차전 경기를 4시간여 앞둔 28일 오후 6시. 서울 마포구 용강동의 BBQ 치킨 전문점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대한민국과 가나의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린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에서 직원이 분주하게 닭을 튀기고 있다. 장진영 기자

 
비가 와 거리는 한산했지만, 치킨집 앞에는 치킨을 받으러 온 사람들, 주문하러 온 사람들, 배달하려는 라이더들이 몰려 북적거렸다. 포장된 치킨이 놓이는 픽업대에는 치킨이 쌓이기 무섭게 번호를 확인해 가져가는 손길이 이어졌다.
 
약 40㎡(12평)의 배달 전문 매장 안에서는 6명의 직원이 12개의 손을 바쁘게 놀리고 있었다. 치킨을 기름에 튀기는 요란한 소리 사이로 “여기 반반 주세요” “황올(황금올리브 치킨) 나왔나요” 등 전표를 보고 치킨을 포장하는 직원들의 목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바쁘게 손을 놀려보지만 완성되는 치킨보다 주문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두 명이 닭을 튀기고 한 명이 양념을 버무리면, 다른 두 명이 포장한다. 한 명은 정신없이 울리는 주문 전화와 배달 플랫폼 주문 전표를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치킨집에서 주문 전화와 플랫폼 주문 알람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오후 8시가 넘어가자 주문 전표가 100번을 넘어섰다. 두 시간 남짓 사이에 100여 마리가 팔린 셈이다. 이곳 점주는 “1차전 때는 예상을 못 해서 세 명이 전표 130개를 처리하느라 나중에는 도저히 감당이 힘들어 주문을 차단했다”며 “오늘은 가족들까지 총출동해 치킨을 튀기고 있다”고 말했다.  

치킨 픽업대에 놓인 치킨이 쌓이기 무섭게 팔려나가고 있다. 장진영 기자

 

비 오는 경기 날, 포장 손님 40% 이상

이날은 비가 와서 배달이 늦어질 것을 예상해 직접 찾아오는 손님들이 특히 많았다. 보통 10명 중 배달이 9명, 포장이 1명이지만, 이날만큼은 포장 손님이 10명 중 4명 이상이었다. 이날 6시 30분경 매장을 찾은 인근 지역 주민(40대)은 “배달 플랫폼에서도 예상 시간이 2시간이 넘고 전화도 안 돼서 직접 주문을 넣으러 왔다”며 “아직 (경기까지) 시간이 많아서 완성되면 다시 찾으러 올 생각”이라고 했다.  
 
퇴근하면서 주문하는 손님도 많았다. 오후 7시경 한 30대 남성은 “지난 우루과이전 때 경기 임박해서 주문하려다 실패해 이번에는 아예 퇴근길에 직접 왔다”며 “지금 주문해도 1시간 30분 이상 걸리니까 저녁 겸 먹고 응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달 라이더들도 대목을 맞았다. 오후 8시경 한 배달 플랫폼 업체 기사는 “오늘만 치킨 22마리를 배달했다”며 “경기 끝날 때까지 50마리 (배달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매장 안에 치킨 배달을 하는 라이더들과 직접 찾으러 온 손님들로 북적이고 있다. 장진영 기자

 
오후 6시부터 본격 시작된 치킨 전쟁은 축구 경기가 시작되고 약 20분 후 마무리됐다. 전표 기준 주문 번호 170번을 끝으로 재료가 떨어져서다. 약 네 시간 동안 이 매장에서 튀겨진 닭은 200마리 남짓. 평소 안 될 때가 50마리, 잘 될 때가 80마리니, 어떻게 봐도 4년 만의 대목이 맞다. 


이곳 점주는 “오늘 평소보다 세 배는 더 팔린 것 같다”며 “요즘 장사가 잘 안돼 문을 닫는 주변 가게가 많았다. 월드컵 덕분에 오랜만에 정신없이 바쁘면서도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치킨 3사 일제히 매출 2~3배 폭증

비 오는 경기 날 ‘집관족(집에서 관람)’이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면서 치킨 업계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국 대표팀과 가나의 경기가 열린 28일, 치킨 프랜차이즈 빅3 업체의 매출이 일제히 급증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교촌에프앤비에 따르면 28일, 지난주 같은 요일인 21일 대비 매출이 150% 늘었다. 전월 같은 요일인 10월 31일과 비교해서는 160% 증가했다. 교촌은 전날 주문 급증을 우려해 자사 앱에서 배달 주문을 일시 중단시키고 포장 주문만 가능하도록 했다.  
 
제너시스BBQ 그룹도 28일 매출이 지난주 월요일 대비 190% 상승했다고 밝혔다. 같은 요일인 지난달 31일과 비교하면 220% 상승한 수치다. 지난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 비해서도 4% 상승했다.  
 
BHC도 전주 대비 312%, 전월 대비 297%, 전년 같은 날 대비해서는 213% 매출이 올랐다. BHC는 우루과이전에 앞서 자사 앱에서 동시 접속자 수를 수용할 수 있는 서버를 최대 3배까지 늘리는 등 사전 대비를 했다. 
 
대비를 못 한 일부 치킨 주문 앱은 오후 7시부터 서버가 느려지기도 했다. 오후 8시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배달 플랫폼으로 배달 주문을 시키면 주문 취소가 속출했다. 서울 강남 일부 지역의 경우 한때 배달비가 9000원에서 1만 원대로 치솟는 등 치킨 대란이 저녁 내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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