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돼 “두 여성이 탯줄을 자르는 힘든 과정을 예리하게 그렸다”고 평가받은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가 10일 개봉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출신 김세인(30)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5관왕(뉴커런츠상·넷팩상·관객상·왓챠상·올해의 배우상), 서울독립영화제 배우부문 독립스타상, 무주산골영화제·서울국제여성영화제(발견부문) 대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의 작품이다. 정한석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는 “괴력과 완력의 감정적 강도로 관객들을 끌고 가는 영화”라고 표현했다.
비혼·취업난…캥거루족 현실 겹쳐져
10대 딸을 둔 홀아비 종열(양흥주)과 재혼을 준비 중인 수경은 직장이 있는데도 자립할 생각은 않고 얹혀사는 이정이 자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것 같아 짜증을 낸다. 아직도 엄마와 속옷을 같이 입을 만큼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이정은 애정 표현은커녕 잘못해도 사과조차 안 하는 엄마가 야속해서 더 삐딱하게 군다.
욕실에서 엄마가 애인과 사랑을 나눈 흔적을 발견한 이정의 보복을 바라보는 관객도 심경이 복잡미묘해진다. 한 지붕 아래 두 여자의 삶이 너무 가깝게 붙어있어서 오해도 원망도 커지는 게 아닐까. 어느 한 사람을 편드는 게 아니라 양쪽의 입장을 고루 생각해보게 하는 게 김세인 감독이 밝힌 연출 의도다.
영화 속 상황은 성인이 돼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는 ‘캥거루족’ 자녀가 많아진 요즘 한국사회 현실과도 연결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 6월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만 19~49세 성인 남녀 중 미혼자의 64.1%, 비취업자의 43.6%가 부모와 동거하고 있다. 만혼·비혼뿐 아니라 경제난으로 인해 독립 시기가 늦어지는 추세란 분석이다.
10일 개봉 영화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
김세인 감독 장편 데뷔작…韓모성신화 비틀어
한국사회 모성신화·차량 급발진 연결 이유
그는 “가족 내에서 부성보단 모성에 기대하는 게 많고, 엄마 역시 딸한테 정서적으로 기대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모성에 대해선 이걸 해주지 않으면 엄마로서 자격 미달이란 죄책감을 심어주는 마케팅이 많다”고 말했다.
극 중 모녀의 갈등을 차량 급발진과 연결한 것도 이유가 있다. 김 감독은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한 급발진 소송에서 첫 승소가 나기까지 대기업에서 하자 있는 제품을 만들지 않을 거란 사회적 믿음이 견고했고, 급발진을 개인이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모성이나 사랑이란 감정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인데 우리 사회는 ‘모성’이란 고정된 상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벗어나면 그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비난한다"고 했다.
같은 속옷 입는 건 모녀뿐, 일본서도 공감
일본에선 한국과 같은 제목을 사용했다. “모녀 사이 문제에 대한 화두는 일본에선 20년 전부터 활발히 다뤄지고 있었다. 양국 간 문화적 연결점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김 감독은 말했다.
배우들의 존재감도 대단하다. 부산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신예 임지호는 심사를 맡은 엄정화 배우로부터 “천천히 움직이며 켜켜이 쌓아가는 감정선은 관객들을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한다”고 호평 받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남선우 프로그래머는 양말복에 대해“‘어머니라는 존재는 결국 엄마 놀이를 하고 있는 딸일 뿐’이라는 엘레나 페란테 소설의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하는 배우”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