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길라는 선천성 희귀질환인 폴란드 증후군 환자로, 오른팔이 없는 채로 태어났다. 폴란드 증후군은 한쪽 가슴에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팔 등이 자라지 않는 질환을 겪는다. 그 때문에 학교에선 친구들에게 늘 괴롭힘을 당했다. “이렇게 태어난 건 네 잘못이 아니라 엄마 잘못”이라고 악담을 하거나, 아길라에겐 없는 오른손으로 공을 잡아보라고 시키는 식이다. 아길라는 “지금이라면 신경도 안 쓸 어처구니없는 말이지만, 그땐 그런 말들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레고 갖고 놀며 외로움 달래
다시 레고를 만지기 시작한 건 17살 때다. 손가락과 모터, 압력 센서가 있는 의수를 만들었다. 마블 코믹스의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의 수트 MK를 본떠 작품 이름도 MK-1으로 붙였다. 이후 수차례 새로운 버전을 거쳐 제작한 최신 모델 MK-V는 팔 센서에 모터로 명령을 주고받는 제어 장치가 있고, 근육처럼 수축하는 케이블을 장착했다. 벽에 충돌하는 실험에선 벽이 손상될 정도로 튼튼했다.
의수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수년 전 의수 구입을 고려한 적도 있지만, 너무 비쌌다. 아길라는 “내가 만든 의수를 직접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의수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미 (오른팔이 없는) 상태에 적응했다”며 “그저 재미있어서 만든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2만원으로 만든 ‘진짜’ 레고 의수
아길라가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단지증을 앓고 있는 8살 소년에게 의수를 만들어줬을 때다. 그는 소년의 부모님에게서 연락을 받고 단돈 15유로(약 2만원)로 의수 2개를 만들었다. 그가 만든 의수를 착용한 소년이 환하게 웃었을 때 느낀 보람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그는 말했다. 의수를 만드는 것은 개인마다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디자인 설계에 적잖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가 가장 의지하는 대상은 아버지다. 아버지는 아길라가 처음으로 만든 의수 MK-1을 영상으로 만들어 페이스북에 공유했고, 스타워즈 저작권을 가진 디즈니에 직접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아길라의 의수에 MK 시리즈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이번에 출간한 책도 아버지와 공동으로 썼다. 아길라는 유튜브 ‘핸드 솔로’를 통해 레고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아길라는 “왕따 같은 삶의 고통이나, 의수 구입 비용으로 최대 10만 유로를 지불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며 “이번 책은 레고를 통해 내 상황을 극복한 게 아니라, 내가 매일 학교에서 당한 괴롭힘을 극복한 방법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제 나는 토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든 의수는 (토르에게 힘의 원천이 되는) 망치 같다”고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