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는 6일 전화 통화에서 “다시 태어나서 이 세상을 처음 느끼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몸은 좀 어떤지’라는 물음엔 “오늘 걸어가서 샤워도 했다”고 말했다. 생환 사흘째인 6일 현재 박씨 등은 시력보호용 안대를 수시로 벗어가면서 조금씩 자연 빛에 적응 중이다. 의료진이 짜준 식단에 맞춰 제대로 된 식사도 시작했다. 죽과 미역국, 소고기·계란찜·나물 등 반찬을 먹었다고 한다. 미역국은 구조돼 구급 차량으로 이송 당시 먹고 싶은 음식으로 꼽은 메뉴이기도 하다. 의료진은 둘의 건강 회복 속도가 빨라 수일 내 퇴원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연의 빛 적응 중…수일 내 퇴원 예상
박씨 등은 칠흑같이 어두운 갱도 속에서 9일간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박씨의 경험과 소방당국의 발표 내용 등을 토대로 사고부터 구조까지 상황을 재구성해 봤다.
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발생했다. 경북 봉화군 소천면 서천리 아연광산의 제1 수갱(수직갱도) 하부 46m 지점에서 토사 300~900t이 갱도 아래로 쏟아지면서다.
박씨는 붕괴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해 냈다. 그는 “지난달 26일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가 근무시간이었다”며 “관리·보안 감독이 왔다가 (지상으로) 올라간 뒤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쾅쾅’”하는 벼락 치는 소리가 났다. 파이프와 토사 등이 2시간가량 쏟아져 내렸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2 수직갱도 지하 140m까지 내려간 뒤 수평으로 진입로를 뚫는 작업과 매몰 장소로 예상되는 위치의 땅 위에서 시추기를 이용해 수직으로 뚫고 내려가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빠른 구조를 위해 발파 작업도 진행했다. 매몰 등 재난·재해 골든타임인 72시간이 지났지만 구조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처음 고립되고 사흘 정도는 갱도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직접 탈출구를 찾아보기도 했다. ‘모든 길이 막혔다’는 걸 알게 된 이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괭이를 들고 갱도 벽을 직접 뚫으려고 시도했다. 동료 작업자들이 갱도 내에 없다고 판단한 박씨 등은 갱도 벽을 뚫고 지상에 ‘생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화약으로 발파를 시도하기도 했지만 암석 일부만 떨어져나가며 실패했다.
“커피믹스 30봉지, 모닥불에 물 끓여 먹어”
자력 탈출이 어렵게 되자 박씨 등은 고립 현장 주변에 있던 비닐로 천막을 쳐서 바람을 막고, 체온 유지를 위해 모닥불을 피우며 구조를 기다렸다. 서로 몸을 밀착하는 생존법으로 추위와 싸웠다.
이들은 갱도 내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받아 마셨다. 가끔 바깥에서 들려오는 발파음이 유일한 희망의 소리였다. 그러다 구조 직전인 고립 열흘째 헤드 랜턴 배터리가 바닥났다. 주변이 칠흑같이 어두워지면서 “이제 힘들 것 같다”는 절망도 한때 느꼈다고 한다.
그럴 때쯤 어둠 속에 기적이 일어났다. 수평으로 갱도 진입로를 뚫고 있던 동료와 소방대원을 만난 것이다. 박씨는 “(당시 반대편에서) ‘형님’ 하면서 막 (동료가) 뛰어오는데 서로 막 부둥켜안고 울었다”며 “꺼져 가는 촛불이 한 번에 팍 다시 살아난 그런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박씨는 “(구조된 후) 여러 사람에게 최근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고 들었다”며 “이런 가운데 (내가 살아 돌아온 것이) 조금이나마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구조 지시를 하는 등 너무나 많은 분과 정부 기관에서 도와줘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데 감사를 드리고 응원해 준 많은 분한테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한편 붕괴 사고와 관련한 경찰 수사도 본격화됐다. 경북경찰청은 이날 3개 팀 18명으로 봉화 아연광산 갱도 붕괴사고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광산 운영업체를 상대로 법 위반 사항과 과실 여부를 조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