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트는 이번 참사로 숨진 외국인 26명 가운데 유일한 스리랑카인이다. 31일 오후 6시쯤 서울 중구 주한 스리랑카대사관 앞에서 만난 스리랑카인 40대 하킴과 라흐마는‘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무하마드 지나트(26)에 대해 “오로지 가족 생계만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던 동생이었다”고 말했다.
스리랑카에 있는 가족들이 지나트의 장례를 스리랑카에서 지내기로 결정함에 따라 지인들이 시신 인계 과정을 거든 것이다. 하킴은 “본국과 소통하면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역만리에서 억울하게 사망한 고국 동료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귀국 앞두고 무너진 외국인 노동자의 꿈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지나트는 한국에서 마스크·조명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해 월 200만~25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830달러(약 492만원)인 스리랑카 경제적 수준 등을 따졌을 때 “매우 큰 돈”(라흐마)이다.
지나트는 공장 근무 외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한다. 라흐마는 “지나트 어머니는 암에 걸려 건강이 아주 나빴고 아버지도 지병이 있어 온 가족 사정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에 온 스리랑카 노동자라면 공감하겠지만 나락으로 갔으니 여기에 온 것”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돈이 없고 먹고 살기 힘드니 고향을 떠나 한국에 왔죠. 생활비를 보내면 지나트가 쓸 돈은 거의 없었을 겁니다.”(하킴)
한국에서 스리랑카로 시신을 보내는 과정에는 약 600만~700만원(추정)이 든다고 한다. 지나트 지인들은 그가 생전 다녔던 이슬람사원 등에서 운구에 쓰일 돈을 십시일반으로 모을 예정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침통해 했다. “한국이 위로금(2000만원)을 준다고 들었는데 (지나트가) 평생 한국에서 못 벌 돈을 죽음과 맞바꾼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고려인 여성 꿈도 덮친 ‘이태원 악몽’
고인과 함께 일한 동료들에 따르면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박 엘레나는 지난해 4월 한국에 왔다. 대학을 졸업한 뒤 새로운 도전을 꿈꾸며 택한 이국행이었다. 한발 앞서 한국에 터를 잡고 일하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 온 박 엘레나는 경기도의 한 러시아 어학원에 취업해 4~14세 어린이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틈틈이 영어 강의도 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등 열심이었던 그는 인기 만점 교사였다고 한다. 박 엘레나의 동료 교사인 방 따찌야나(37)는 “엘레나는 여행과 아이들을 좋아하는 아주 밝은 사람이었다”고 전했다.
박 엘레나 아버지는 한국에 빈소를 만드는 대신 선박을 통해 딸의 시신을 이송할 방안을 찾고 있다고 한다. 딸이 고향에 묻혔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러시아 어학원에서 고인과 함께 일한 김유나씨는 “엘레나는 아이들이 잘 따르던 선생님이었다. 엘레나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