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30분, 방모(43)씨가 등굣길 책가방을 멘 초등학교 2학년, 5학년 아이를 데리고 1번 출구 앞에 섰다. 용산구 주민인 방씨는 지난 29일 가족과 함께 핼러윈을 즐기러 이태원에 나왔다가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술에 취해서 사람들이 쓰러져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 뉴스를 보고서야 압사 사고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방씨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날 밤 상어로 분장하고 따라나섰던 아이들도 함께 현장을 목격했지만 방씨는 너무 충격받을까 봐 아이들에게 곧바로 사고에 대해 설명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방씨는 “가슴이 먹먹하다. 너무 어린 친구들이 놀러 갔다가 그렇게 돼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아이는 각자 가져온 꽃다발을 헌화했다.
혹시 나랑 사진 찍었던 사람일까…사진첩을 못 열어봐
경북 김천에 사는 천승열(38)씨는 가족들과 함께 백령도에 단체 관광 여행을 갔다가 사고 소식을 접했다. 천씨는 “여행을 마치고 인천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이 너무 불편해 부모님을 먼저 내려보내고 홀로 꽃을 사서 이태원을 찾았다”며 “나도 키가 크지 않은데, ‘내가 저기 있었으면 나도 저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계속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마 평생 가져갈 기억일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못다한 일들과 꿈들 잊지 않겠다”
희생자들의 지인들이나 목격자들이 남긴 걸로 보이는 쪽지도 남아 있었다. 분홍색 꽃다발에는 “한 분이라도 더 살렸어야 했는데 죄송할 뿐입니다”라는 내용의 편지가 남아 있었다. “제 친구들을 포함한 모든 여러분, 꼭 좋은 곳 가셔서 행복하세요”라고 적힌 포스트잇도 붙었다. 뒤돌아 눈물을 훔치거나 “젊은 애들 아까워서 어떡하냐”며 목놓아 우는 시민들도 있었다.
쪽지들 중에는 중국어, 베트남어 등 어려 외국어로 적힌 편지들이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이번 사고로 이란·중국·러시아·미국 등 총 14개국 26명의 외국인 사망자가 발생했다. 추모객들이 두고 간 꽃다발과 간식, 술은 하나둘씩 늘어 오후가 되자 인도를 절반 이상 덮었다.